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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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학교 입학식] 8월 20일 수륙재학교 입학식 법문
자현스님 2023-08-20
안녕하세요. (박수) 이렇게 시작할 때 박수 치고 이런 거 다 예전 방식이에요. 식상한 방식 이런 거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늘 수륙재 학교 입학식 이렇게 해 가지고, 뜬금없이 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제가 이렇게 한 번 길 내놓으니까 계속 오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수륙재에 관심이 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월정사 근처에 삼화사 가 있거든요. 그래서 삼화사하고 진관사가 같이 수륙재 사찰로 등록이 됐었고. 그다음에 원래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이제 이씨 왕조에서 죽였어요. 그래서 그게 좀 두려워서 수륙재를 더 활성화시켰어요, 조선시대 때. 국행이라는 게 정부에서 했다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좀 해드릴 거예요. 근데 지금은 아니고. 되게 재미있는 현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지금은, 요즘은 이제 그런 거 보기가 조금 어려운데, 어떤 게 있냐면, <입시철이 되면 한파가 온다.> 그래서 입시 한파라는 게 있었어요. 믿거나 말거나 한 거였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입시 한파를 없애기 위해서 수능도 굉장히 날짜가 당겨졌고, 한파가 오기 전에 거의 끝나죠. 그리고 수능만 보는 게 아니고 수시로 대부분 다 들어가기 때문에, 입시 한파는 무슨 개뿔, 입시 한파, 이제 이렇게 상황이 바뀌었죠. 근데 왜 입시 때는 한파가 온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을까, 그 생각 한번 해보셨어요? 그게 뭐냐 하면, 사람들이 많이 쫄기 때문에 그런 거 좋아하세요. 시험 보고 뭐 이런 거, 짜릿짜릿한 거 좋아하세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약간 변태 같아서, 제가 그런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시험 보는 거라든지, 안 그러면 높은 데 이렇게 벼랑 같은 데 서 있는 거라든지, 100m 달리기 할 때 출발선상에 딱 준비하고 있는 거, 이렇게 찌릿찌릿하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나요. 굉장히 재밌어요. 그리고 시험 볼 때도 시험지가 이렇게 싹 돌아오는 그 순간 있잖아요. 그거 굉장히 느리게 가거든요. 사람이 막 쫄려가지고 각성 상태에 있어서 그게 느리게 움직이는 거예요. 실제로 시험 감독으로 들어가서 시험지 나눠주면 금방 넘어가거든요. 근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막 오는 거 같은, 막 파도 치는 것 같은, 막 쓰나미 오듯이 쫙 이렇게 온다니까. 그런 거. 여러분도 이제 좀 있으면 시험 준비하셔야 돼요. 염라대왕이 뭐 물어본다. 염라대왕은 구술 시험을 봅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래서 이게 동중서의 천인상설, 천인상감설이라고 하는 데서 유래가 되는 거예요. 그게. 한나라 때, 전한 무제 때 동중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보면 중국의 유교를 국교화시킨 사람이에요. 그러니까는 기독교로 말하면 바울 같은 사람이죠. 공자가 잘한 부분도 있겠지만, 뒤에 이제 누가 어떻게 정권과 연합을 해서 체계를 잡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그 동중서의 천인상설, 천인상감설 이러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소우주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운이 하늘에도 영향을 주고, 하늘의 기운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이렇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뭐 생각하시면 되냐면, 예전에 그런 거 있었어요. 큰 인물이 돌아가시면 별이 떨어진다더라. 삼국지에도 그런 얘기 나옵니다. 그래서 오장원에서 제갈공명이 죽으니까 무슨 별이 떨어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들이 있는 거예요. 지금 좀 오래된 얘기인데, 모르면 행복한 겁니다. 예전에 김영삼 대통령 때 여러 가지 사건들이 좀 많이 있었어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좀 많이 있었어. 그러니까 뭐라고 사람들이 얘기했냐면, 대통령이 잘못해서 이렇게 재앙이 내린다. 이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되게 웃기지 않아요? 그게 대통령이 잘못한다고 책임을 질 만한 일인가, 아니면 어떻게 보면 사고잖아요. 물론 좀 더 조치들을 잘했으면 그런 사고가 안 났겠지. 근데 그런 의미 말고 또 다른 의미가 그 안에 내포되어 있다니까요. 그게 뭐냐 하면, 지도자가 덕이 없으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덕이 없으니 그런 큰 사고들이 연이어 터진다라는 식이 그게 천인상응설입니다. 그래서 땅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어떻게 보면 그 에너지를 잘못 만들어서, 그래서 하늘은 그것을 경고하기 위해서 재앙을 준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도 그런 얘기들이 있어요. 누에를 한참 키우고 해야 될 때인데, 벌레들이 많이 생겨서 뽕나무가 작살이 난다는 거예요. 그러면 임금이 어떻게 어떤 행동을 하냐면요. 그 사실 기후랑 관련해서 어떤 벌레들이 이렇게 이상증식할 때가 있거든요. 이렇게 보면. 딱 그런 걸 거야. 근데 뭐라고 얘기하냐면 그 벌레를 쌈 싸 먹습니다. 날로. 날로 먹으면서 내가 덕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다음에 비가 안 오거나 비가 너무 와도 그런 행동들을 합니다. 그래서 임금이 하늘의 죄를 이렇게 빌면서, 청하면서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게 천인상설이에요. 그래서 하늘과 인간은 이어져 있다. 소우주론이라고 보시면 돼요. 동아시아 사람들은 많이 들어본 얘기입니다. 사실 수륙재가 그것과 관련해서 나오는 동아시아의 특징적인 문화라는 그런 측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얘기를 해드리는 거예요. 돌아가신 분이나 이런 분들이 그냥 잘 가면 좋은데 잘못 가는 사람들이 있대요. 살다 보면. 장화홍련같이 이렇게 안 좋게 죽었는데 뒤끝까지 있는 경우. 제가 장화홍련 얘기할 때 그런 얘기하거든요. 장화홍련전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은 누구냐. 처음 부임한 사또다. 과거 시험 통과하려면 그 당시 2천대 1이에요. 2천대 1. 한 댓 살부터 시작해가지고 보통 합격하는 평균 연령이 30살 초반에 합격을 합니다. 그래가지고 이제 개고생 끝인가 노량진에서 컵밥 20년 먹고 나와서 겨우 부임했는데, 귀신 나와서 죽어. 하루아침에 심장마비로 죽어버렸어. 자식이 공부만 했지, 운동을 안 했는가 봐. 사람이 좀 여린 거지. 우리 같으면 귀신 나오면 ‘이거 대박집 아니여.’ 이제 이렇게 생각을 할 건데. 그런 얘기 있잖아요. 영화도 그렇고 식당도 그렇고 귀신이 보인다, 이러면 대박난다. 그런 거 못 들어봤어요? 뭐 이런 쓸데없는 얘기겠지. 귀신 나오면 뭐 굿이 대박이 나겠지. 그래서 제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전에 그런 얘기했어요. 장화홍련전 같은 논리 구조라면, 장화 홍련이 억울해서 죽어서 귀신으로 나오는 것처럼 사또는 또 억울한 귀신이 돼서 장화 홍련을 따라다녀야 된다. 근데 사또는 성격이 좋았던 거예요. 나 같으면 20년 동안 개고생해서 겨우 합격해 가지고 부임했는데, 그날로 죽었으면 야 이거 눈 못 감는다. 난 진짜 장화 홍련 합친 것보다 더 센 진짜 만렙 귀신이 돼가지고 뭔가를 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사또는 굉장히 호인이었는가 봐. 그래서 저분이 심장은 안 좋았는데 성격은 좋았구나. 그런 걸 알 수 있는. 그렇게 해서 억울하게 돌아가시거나 아니면 맺힌 게 많으면, 그런 사람들이 많이 쌓여 있으면, 그게 안 좋은 기운을 만들어서 나쁜 영향을 준대. 그게 뭐 악귀일 수도 있고, 조선시대 때도 그런 얘기가 나와요. 뭐가 나오냐면, 조금 이렇게 기운을 풀려고 하면 대사면령을 내리거나, 안 그러면 뭐가 있냐면, 요즘 왜 기온이 이상 기후가 자꾸 나는데 대전에서 이렇게 회의를 열면 굉장히 놀라운 얘기가 나옵니다. 요즘 결혼하지 못한 미혼 애들이 되게 많아서, 나이를 먹었는데 결혼하지 못한 애들이 많아서, 그게 원한으로, 쉽게 말해서, 그 기운들이 자꾸 원망하는 기운이 쌓여서 이렇게 나쁜 기운을 만들어서 기온이 순조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해. 그러면 무조건 몇 살 이상은 결혼을 시켜라. 이렇게. 진짜라니까.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에 이상 기운이 많은 게 안 가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 예전에는 우리만 안 갔는데, 안 가는 게 우리의 전유물이었는데, 이것들이 절에는 안 오면서 개나 걸이나 다 안 가요. 요즘은. 내가, 우리가 위협받고 있다니까. 그래서 오히려 절에는 사람들이 잘 안 와. 자기들이 밀지만 않았지, 자기가 반은 그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이게 종단에서도 출가 안 한다고 자꾸 그러는데 실제로 출가를 안 할 뿐이지, 독신으로 사는 거는 유사 이래로 지금이, 아주 식상한 표현을 쓰면 단군 이래 최대일 겁니다. 뭐든지 단군 이래 최대야. 그러면 제네시스 나온 것도 단군 이래 최대고. 다 최초 아니에요. 세상에 단군이래 최초, 최대 아닌 게 뭐가 있어, 다 그런 거지. 그래서 그거 되게 재밌어요. 그래서 요즘 기온이 우리나라가 이렇게 들쭉날쭉하는 것도 다 그런 건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이 절에 와보니까 이 절에는 사람이 많네. 이 절에는 사람이 많아.그래서 수륙재 기운이 진짜. 아까 여기 들어오기 전에 우리 스님하고 잠깐 이렇게 차를 마시고 인사드렸는데, 수륙재에 대해서 막 세뇌를 시키는 거야. 좋은 에너지가 빵빵하다고 막 세뇌을 시키는 거야. 그래서 속으로 내가 무슨 생각했냐면 저도 오대산에서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민지의 보개산석대기에 보면, 금강산, 오대산 그다음에 보개산에 사는 사람들은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게 있어. 그래서 나는 삼악도에는 떨어지지 않겠다. 지옥 아귀 축생은 끝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여기 오니까 또 서기가 맺힌대. 상서로운 기운이 막 삼생에 걸쳐서 맺힌대. 삼생에 걸쳐서. 이게 이거 두 군데 찍으면 천하무적이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여기가 그런 기운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참 많이 이렇게 오시는가 봐. 근데 이렇게 뵈니까 음기가 좀 세네. 지금 이 기운하고 관련된 이야기들을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했었어요. 그리고 그게 동중서랑 관련된 얘기고, 이 기운들을 어떻게 풀 것이냐와 관련된 게 있어요. 그리고 되게 재미있는 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예전에는 무슨 생각을 했었냐면요, 결혼 못하고 죽으면 원기가 됩니다. 그게 처녀 귀신, 몽달귀신. 그래서 우리 귀신계를 보면 가장 지분이 높은 게 처녀 귀신이잖아. 머리를 풀어헤치고, 덤블링을, 백덤블링을 하면서, 그것도 귀찮으면, 덤블링하는 사람 구하기 귀찮으면, 그냥 이렇게 줄 매달아서 쭉 밀고 가고 이런 처녀 귀신. 실제로 점 보는데, 무당집에 가도 처녀 귀신, 몽달귀신, 몽달귀신은 남자, 장가 못 간 남자, 그래서 처녀 귀신보다 몽달귀신이 세다. 이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사실 여러분들이 다 결혼을 해보셨잖아. 안 해보신 분도 있지만, 여기 지금 연령이 낮으신 분들은 안 해보셨겠지만, 제가 안 해보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좀 그런데, 해봐도 그닥이야. 해봐도 그닥이지. 여러분 해보니까 막 환희심이 느껴지지, 그지? 한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그게 정신 건강에 좋은 거예요. 불만족스러워요? 어떤 사람은 내가 그때 엄마 말을 들었어야 되는데, 엄마 말 안 듣고 내가 우기다가 지금 인생이 이렇게 됐다. 엄마 말 들었어도 큰 차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내 옆에 있는 분이 제일 좋은 분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게 제일 좋은 거예요. 그리고 안 해보신 분은 안 한 대로 또 맛이 있다, 하면 하는 대로, 그래서 결혼을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고. 근데 결혼이 힘드는 거는 예전에도 그랬던 거고, 서양 속담에도 나와요. 그게.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두 번 기도한다.> 이런 여러분들이 기도가 지금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기도하러 왔잖아. 말년에라도 만회하려고. 잘 선택하신 거예요. 잘 선택하신 거예요. 그래서 아니 결혼 안 했다고 뭐가 이렇게 원한이 됩니까? 근데 유교에서는 결혼을 안 하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고 봐서 그래요. 지금하고는 인식이 달라. 그래서 뭐가 있었냐면, 여러분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영혼결혼식도 했었습니다. 결혼 못한 사람끼리 돌아가시면 사진을 갖다 놓고 영혼결혼식도 막 하고. 귀신 입장에서는 이게 뭔가, 왜 내가 쟤랑 갑자기 살아야 되나, 엄마 눈이 이렇게 낮나, 이거 뭐 살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어서 꿈에 나타나서 뭘 어떻게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그분들은 또 착하더라고. 그렇게 시켜주면 또 이렇게 원한이 풀렸다는 둥, 내가 보기에는 그때부터 원한이 본격적으로 쌓이기 시작할 것 같은데. 그래서 이 수륙재라고 하는 것도 이런 기운들을 다 푸는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천인상설에 따르면, 어떤 안 좋은 기운이 이렇게 적층되면 사고도 생기고 천재지변도 생기고, 그게 집 안에 그러한 게 있으면 우리 여러분 어렸을 때 그런 얘기 많이 들으셨잖아. ‘어깨에 누가 앉아 있다. 어깨 무겁지.’ 어깨에 앉아. 그래서 제가 그 얘기 해드렸거든요. 귀신들 니 어깨에 앉고 싶었냐? 왜냐하면 이 어깨에 앉아 있는 게 굉장히 힘듭니다. 내가 작은 귀신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불안하겠나. 이게 평평한 데도 아니고. 그다음에 이놈이 걸어댕기지, 귀신도 못 해먹을 짓이에요. 그게 차라리 어깨에 앉을 바에는 목마를 타지. 목마 하면 차라리 좀 편치.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어깨에 앉아 있는다는 거 되게 재미있는 설정이에요. 그런데 그분들이 제대로 어디를 못 가고 무언가 요청하는 거예요. 근데 똑같은 구조가 인도에서도 보이는 거죠. 그래서 이제 제삿밥 같은 거를 처음에 돌아가시고 조령제라고 하는 데서 제삿밥을 잘 못 드시고 이러면 그게 아귀가 돼. 아귀가. 그리고 지금 제가 지난주에는 우란분절 때문에 왔잖아요. 근데 오늘은 지금 수륙재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냐면 이게 이거고 그게 그거 아닙니까? 엎어 치나 메치나 비슷한 거 아닙니까? 다릅니다. 다릅니다. 그래서 뭐가 다른지를 잠깐만 가르쳐 드릴게. 우란분재의 주인공은 목련존자입니다. 목건련. 그래서 어머니를 구하는 스토리고, 그래서 제가 지난주에 그 말씀을 드렸던 거고. 수륙재의 주인공은 아난입니다. 부처님 10대 제자 중에서 아난입니다. 몰랐지. 오늘 지금 천인상설도 처음 들었고, 아난도 처음 들었어. 고마운 줄 알아. 그게 수륙재 경전에 보면, 면연아귀 다라니경 아니면 염구아귀 다라니경 이런 데 보면, 아난에게 하루는 면연아귀, 아귀의 왕이래요. 아귀는 배고파. 배를 곯고 있는 귀신. 그래서 아귀 형상을 보면, 제가 무슨 생각했냐면, 아마 사람이 굉장히 많이 굶으면 아귀처럼 비슷하게 돼요. 마르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복수가 차. 그리고 너무 굶으면 목을 못 가눕니다. 그래서 예전에 요즘은 그런 거 영상 잘 안 나오던데, 아프리카에 굉장히 가난한 국가 애들 유니세프에서 ‘이렇게 좀 해주세요’ 이러면서 나올 때 보면 목을 언제나 받치고 있어. 목이 뒤로 넘어가 버립니다. 아니 너무 굶으면, 힘 빠지면, 목을 못 가눕니다. 이게 생각보다 무겁다니까. 막상 든 건 별로 없는데, 의외로 무거워요. 그래서 어린애도 목 가누는 데 상당히 걸려요. 시간이. 목을 어느 정도 가눈다는 건 힘이 있다는, 맞다니까요. 제 말이 맞다니까요. 그래서 굶으면 단순히 배가 들어가는 게 아니고, 너무 굶으면 복수가 차서 배가 튀어나오게 되고, 그다음에 목을 못 가눠요. 그게 아마 아귀 형상에 영향을 줬을거다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불교적으로는 그걸 침구귀라고 합니다. 모기 바늘 같은 바늘 침자를 써서, 목구멍이 바늘 같은 귀신 이래서, 침구귀라 그래요. 그런데 그 면연 귀왕이라고 하는 아귀 대장이에요. 아귀 대장이 아난한테 하루는 나타나가지고, 뜬금없는 멘트를 날립니다. “너 3일 뒤에 훅 간다.” 이게 뭔 무당도 아니고, 갑자기 점 보러 갔을 때 들을 것 같은 멘트를 해. 너 3일 뒤에 훅 간다. 그런데 딜을 하는 거야. 무당들도 언제나 그렇게 얘기합니다. 뭐가 안 좋은데? 전설의 고향도 딱 그렇게 얘기해. 그런데 비방이 있다. 나 그거 너무 웃겨요. 안 좋으면 안 좋은 걸로 끝이지. 무슨 비방. 뭘 하면 이제 대가를 또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귀들에게 공양을 좀 올려주면 그러면 그 공덕으로 수명이 연장되고, 그리고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난다.’ 나 이게 뭔 소리인지 잘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아니 아난 존자가 천상에 태어날 그 정도 짬밥이 아닌데, 이게 급이 있는데 사람이, 그렇게 협박을 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는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그냥 길 가다 삥 뜯기는 듯한 느낌인데, 그냥 나타나서 너 3일 뒤에 죽으면 아귀 된다. 그런데 “내가 아귀 왕인데 우리 쪽한테 뭘 좀 많이 먹을 거를 주면, 배고픈데 주면, 내가 너를 수명도 연장시켜주고, 천상에 태어나게 해줄게. 그것 어렸을 때 좀 겪어봤던 일인데, 고등학교 때 이렇게 삥 뜯길 때 너 잠깐 와봐. 100원만 줘 봐. 100원만, 내가 안 갚냐” 이래가지고, 그래놓고 꼭 삥을 뜯어갈 때 맨 마지막 멘트가 “누가 괴롭히면 얘기해.” 내가 니를 아나. 괴롭히면 뭘 얘기를 해. 비슷한 구조인데 약간 냄새가 나는데, 아난 스님이 부처님 시자를 너무 오래 하셨어요. 부처님 시자로 55세에서 80세까지 25년 동안 하셨거든요. 그래서 세상 물정을 잘 몰라. 그래서 아난이 낚였어요. 아난 스님이 아귀한테 낚였어. 면연귀왕 누군지 알고 싶으면 감로도에 가면 우란분절 탱화의 가운데 이렇게 큰 아귀가 있어. 떡대. 그게 면연귀왕이 아난을 협박했던. 그리고 아난 스님이 그러면 공양을 올리려고 했는데 크게, 그것도 부르는 것도 되게 커요. 되게 많이 달래. 근데 아난 스님이 뭐가 있나. 근데 왜 자꾸 아난 스님이 이런 타겟으로 나오는지 아세요, 혹시? 아난 스님이 약간 얼삥 캐릭터로 나오거든요. 굉장히 똑똑하고 잘생긴 사람인데 약간 얼삥 캐릭터로 나오는 게 아난 스님은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까지 수다원밖에 못 돼서 그래요. 그래서 그 뒤에 대승경전에서 아난 스님을 약간 이렇게 떨어뜨리는. 근데 왜 수다원밖에 못 했냐면 소임에 너무 충실했어. 그래서 부처님을 모시는 일에 충실하다 보니까 수행을 잘 못 했어. 수행할 시간이 부족했대. 그래서 맨 마지막에 부처님 돌아가실 때 뭐라고 하냐면, 아난이 저 사라쌍수 밖에서 울고 있어. 그러니까 다른 제자들은 이렇게 딱 보고 아난이 슬퍼서 우나보다 했더니, 부처님께서 딱 보고 바로 알잖아. “내가 열반하는 것 때문에 우는 게 아니고, 지가 슬퍼서 울어. 내가 부처님을 이렇게 모셨는데도 깨달음을 못 얻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면 이거 어떻게 되나” 이랬어.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그 마음을 아시고 뭐라고 말씀해 주시냐면, “너는 내가 열반하고 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반드시 깨달음을 얻으리라.” 그랬더니 아난 스님이 울다가 그래서 털이 났다는 이 얘기는 대충 알아들어요. 울다가 웃으면 털 나. 그래서 그렇다 치고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래서 아난 스님이 약간 희화적으로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중국에서는 송나라 사람 같은 경우가 희화적으로 나오고 그런 캐릭터들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아난 스님이 아귀한테 공양을 올리려고 그랬는데 돈이 없어.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랬더니 부처님께서 “작게 공양을 올리더라도 진언을 외우면 그게 커져서 약간 뻥튀기처럼 쫙쫙쫙 늘어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그 진언을 하는 게 <무량위덕 자재광명 변식진언>이에요. 스님들이 매번 사시 때마다 하는 그 변식진언이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수륙재랑 관련된 얘기예요. 그리고 이제 여러분들은 아마 잘 모르실 건데, 우리 스님들은 다 아실 거예요. 관음시식 하다 보면 뭐가 있냐면, 하이아난찬(何異阿難饌) 기장함포만(飢腸咸飽滿) 업화돈청량(業火頓淸凉) 돈사탐진치(頓捨貪瞋癡) 상귀불법승(常歸佛法僧)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 이렇게 해서 나오는 대목이 있거든요. 그게 아난의 밥과 어찌 다르겠는가라고 하는 게, 그 시식할 때 아난 스님이 올린 그 수륙재 밥을 먹으면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고 포만감을 가지게 된대. 모든 아귀들이. 그래서 그 원이 다 풀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그런 말을 잘 안 쓰는데, -일본 불교나 이런 데서는 우리나라도 일부는 그런 표현을 쓰더라고요.- <성불을 얻었다, 해탈을 얻었다.> 아니 스님한테 이 표현을 쓰는 게 아니고, 누가 기도를 잘하거나 이러면 해탈을 성취했다. 들어보셨어요? 못 들어봤으면 말아. 그게 뭐냐 하면, 어떤 문제를 풀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문제로 부터 벗어났다. 그런 의미로 쓰는 건데 우리식으로는 많이 쓰는 게 해원, 원을 풀었다, 해원 이런 표현을 씁니다. 그리고 이제 불교 안에서 주로 쓰는 표현은, 무속에서는 해원이라고 쓰고, 무속이나 증산도 이런 데서는 해원, -원을 푼다라는 뜻이에요.- 불교에서는 천도라고 합니다. 좋은 쪽으로 천거해서 좋은 쪽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직장으로 말하면 내가 조금 안 좋은 직장에 있었는데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는 거, 뭐 이런 거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이 가족이라는 게 동아시아 같은 경우는 혈연주의기 때문에, 그 얘기 참 제가 그 얘기 맞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살아볼수록 그건 맞는 것 같아.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바람이 가만히 냅두지 않는다>라는 게 있는데, 집 안을 보면 그 집이 굉장히 괜찮은 집이 있어. 그 바깥 양반도 잘 살고, 그러니까 돈으로 잘 산다는 게 아니고, 굉장히 모범적이고 보살님도 굉장히 좋아. 그런데 그 형제 중에 이상한 놈이 한 놈이 있어. 끊임없이 말아먹는 빌런이 있어. 안 대 주면 안 대 준다고 계속 찐짜를 부리고, 대주면 다시 원위치 돼서 다시 돌아와. 그런 분이 있어. 그리고 또 이런 분들이 어머니의 신뢰를 잘 얻어, 그런 아들이. 그래서 안 도와주면 어머니를 쑤시는데, 어머니가 또 삼각으로 ‘네가 형이 돼서 말이야. 그럴 수 있느냐.’ 또 이래가지고 또 도와주면 또 말아먹고 또 와. 이렇게 계속. 그런 거 걸리면 진짜 미치거든요, 사람. 안 하면 니가 사람이냐 이러고. 내가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끝도 없어. 이게 가족이 한 번 얽히면 수렁이에요. 제사 때문에 얽히는 집도 봤고. 차라리 재산을 안 받든지, 다 받고 한 3년 지나니까 갑자기 교회를 가. 그러면 받은 걸 토해 내든지, 그거는 됐고, 그거는 계약 끝났고, 나는 안 할 거고. 아니 그런 집들 있어. 이게 굉장히 머리 아프다고. 그러면 저한테도 그렇게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차남이 해도 됩니까? 원래는 안 되는 거예요. 제사는 위로만 내려가기 때문에, 적장자로만 내려가기 때문에 원래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차남이 지내면 체이부정(體而不正)이라고, 그러니까는 혈통은 맞지만 정이 아닌 거야. 그래서 그게 문제가 됩니다. 해도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그럴 바에는 아예 끊으라고. 근데 또 끊으라고 말하는데, 뭐라고 얘기하냐면 한 두어 번 했는데요. 그러면 또 못 끊어. 끊을 때 끊어야지. 그래서 이게 이런 식으로 가정이 얽히면 참 피곤합니다. 그게 자녀분이 그렇게 얽히는 경우도 있어. 자녀분이 그렇게 살다 보면 내 뜻대로 잘 안 돼. 저게 뱃 속에 있을 때나 내 뜻대로 되는 거지. 그리고 뭐라고 할 수도 없어. 내가 만들었는데 그걸 뭘 뭐라고 하겠어. 그래서 자식인데 평생 AS를 원하는 자식도 있어. 그게 몇 년 안 크고 그냥 알아서 이렇게 딱 가는 자식도 있고, 계속 AS를 해줘야 돼. 그렇게. 그래서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거든요. 근데 그런 것들이 사실은 잘 안 풀려요. 잘 안 풀려서. 그래서 가족이나 이런 분들 중에서 돌아가신 분이나 이런 분들이 조금 안 좋은 쪽으로 돼 있으면, 그 에너지가 산 사람한테 전달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모든 안 좋은 에너지들을 풀어버리고, 국가 차원에서도 그런 걸 합니다. 그래서 수륙재 같은 게 국행수륙재가 되는 거예요. 국행수륙재. 나라가 왜 주도했겠느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라 입장에서는 안 좋은 기운이 많이 쌓이면, 국가적 재난이 초래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동맥경화 생각하시면 돼요. 동맥경화가 완전히 굳어지기 전에 트랜스 박듯이 아유 비유가 찰지잖아. 이렇게 이렇게 박잖아. 그죠? 그래갖고 이 혈관 이렇게 딱 이렇게 늘려주잖아. 그런 식의 행동을 주기적으로 해내고. 예전에는 도랑 친다는 게 물 범람할까 봐 이게 쳐내는 거. 그래서 그런 식의 행동을 해내는 게 사실은 국가 주도의 수륙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게 되는 이유는 고려 말 조선 초에 조선이 들어서면서, 이게 비정통 왕조였기 때문에 고려를 싹 죽였죠. 왕씨가 전멸한 거예요. 지금 전주 이씨만큼 왕 씨가 많았다고 보시면 돼요. 그거를 싹 죽인 거예요. 그래서 조선 초 세종 때 나라가 안정되고 나서, 왕씨 제사라도 지내게 해줘야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왕씨를 찾았는데, 전국을 다 뒤졌더니 왕순례라는 사람 한 명이 있어서 찾아져서 그 사람으로 제사 지내게 했다라는 게 실록에도 나오고, 이중환의 택리지 같은 데도 실제로 나온다고. 그만큼 전멸 시킨 거야. 전주 이씨를 전멸시켰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많이 죽였겠나. 그리고 그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냐면, 그들이 원귀가 돼서, 장희빈 생각해 봐. 활 몇 번 쐈다가 약 먹고 죽었잖아. 지금 생각하면 그거 좀 너무 억울한 거 아닌가 싶은데, 활 쏠 수도 있지, 아니 남편이 마음에 안 들면 몇 번 쏠 수 있지 뭐. 그렇다고 죽어? 그랬으면 여러분이 다 과수댁 됐지, 안 죽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니까 한둘도 아니고 이게 원귀들이 끊임없이 이렇게 쌓여가지고 계속하면 전주 이씨가 문제가 생기겠다. 실제로.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되게 재미있는 게, 나중에 이씨 조선이 망하게 되는 이유는 자식이 없어서에요. 단종입니다. 단종. 애가 없어. 그래서 철종, 방계까지 막 데려다가 왕을 시키잖아. 없어. 보통은 합스부르크 왕가처럼 족내혼을 했을 때, 친척끼리 결혼했을 때 단종이 돼요. 일본도 지금 거의 단종됐죠. 저렇게 같은 혈족끼리 했을 때. 근데 사실 조선은, 이게 동아시아가 발전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남의 성씨랑 결혼시키는 문화가 있어요. 동아시아만 그래. 딴 데 귀족제나 이런 데 보면 다 자기네들끼리 이렇게 결혼해. 유럽이나 이런 거 봐봐요. 근데 여기는 무조건 부인은 다 남의 성씨를 데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잡종이 되고, 인간은 잡종이 우수한 겁니다. 개나 말이나 이런 거는 순종이 좋은 거고 인간은 잡종이 좋은 거예요. 지능이 훨씬 높아진다니까. 그래서 제가 뭐라고 얘기하냐면, 우리나라가 갑자기 경제성장을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 한국전쟁을 만나면서 한 번 톱질이 됐거든. 이렇게 한번 한 번 움직였거든. 그래서 올라가는 게 아닌가. 그리고 아마 지능 검사하면 그렇게 나올 겁니다. 서울이 제일 높게 나올 겁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최강국은 어느 나라냐. 잡종 국가 미국입니다. 되게 재밌는 거예요. 순종이 안 된다니까. 아니 이거 과학적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뇌피셜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인간은 잡종이 좋은 거야. 그래서 동아시아가 발전하는데 그런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단종이 되는 거는 그 집안이 덕이 쇠한 거는 맞는 것 같아. 안 그러면 왜 애가 없냐, 그지? 여자를 몇 명을 둘 수 있는데. 팩토리를 계속 늘릴 수 있는데, 이게 지금 공장을. 아니 한 명이면 살다 보니까 좀 잘 안 되는 거 있어요. 한 서너 쌍 중에 한 명은 임신이 잘 안 돼요. 그런데 이게 참 희한한 거지. 그래서 고려 왕씨를 너무 죽여서 그때 고려 왕 씨만 죽인 게 아니고, 사실은 불교도 굉장히 많이 죽였어요. 그리고 얘네는 허위로 죽였어. 왕씨를 죽일 때는 배에 태워가지고 섬에다가 살게 해줄 테니까 그래놓고, 배 밑에 구멍 뚫어서 죽여요. 침몰시켜서 죽였어. 그래서 원한이 굉장히 많은 상황이었다고. 그래서 맨 처음에 강화도 관암굴하고, 현암사라고 읽어야 될 겁니다. 자꾸 견암사라고 읽는데 그게 볼 견자를 나타날 현자로 읽어요. 그래서 현암사하고 하다가 나중에 이제 진관사하고 그다음에 삼화사로 옮겨가거든요, 수륙 사찰이. 그렇게 하고 그다음에 나중에 상원사도 들어가요. 수륙 사찰로 상원사도 들어가. 그렇게 해서 상원사도 그때 수륙 사찰로 지정됐으면 됐을 건데, 그때 상원사 주지 스님이 또 생각을 못했는가 보더라고. 나한테 좀 물어봤으면 내가 다 가르쳐줬을 건데 내가 참 갑갑하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수륙재 이러면 물에서, 바다에서 하나? 자꾸 이렇게 생각하더라고. 강이나 이런 데서. 아니야. 그게 그런 뜻이 아니에요. 천지, 하늘과 땅, 명양, 죽었거나 살았거나, 그다음에 수륙, 뭍이나 물이나, 에브리바디 다 그렇게 모든 거를 다 해서 풀어주겠다는 뜻이에요. 모든 원을 다 풀고 좋은 쪽으로 화합된 에너지로 경기를 끝냅시다. 사실은 그 얘기예요. 그리고 그 수륙재의 재를 지내는 그림이 우란분절변상도고, 그 수륙재 때 존상으로 모셔지는 게 천장 보살, 지지보살, 지장보살 삼장보살도입니다. 그게 원래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재가 전통적으로 계속 내려오는데, 이 수륙재라고 하는 게 그 의미가 국가적으로도 그러한 뭉쳐 있는 에너지들을 풀어내야 좋다라고 국운이 융창해진다라고 생각하는 거고, 그런 행동을 국가에서 하니까 일반 백성들도 생각해 보니까 나도 바람 불 때 배를 좀 띄워야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해서 이제 동참들을 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저도 제가 그런 행동을 하는데, 제가 사람들을 이렇게 등급을 매기거든요. 신도를. 저만 그런 게 아니고, 스님들 거의 90%는 저랑 비슷하게 등급을 매깁니다. 1등급은 일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일 잘 도와주시는 분들. 2등급은 돈 내는 사람. 3등급은 말 안 하는 사람. 등외 등급은 카스트로 얘기하면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인데, 이 수드라에 해당하는 사람은 돈 안 내고 말 더럽게 많은 사람. 뒤에서 막 트집을 잡는데, 뭐가 어떻다는 둥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막 이렇게. 저한테도 스님 같으면 강남에 포교당 하나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야 누구는 몰라. 나도 다 알지.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너도 페라리 타고 다녀, 똑같은 얘기지 입으로만. 그래서 제가 이 수륙재 학교라는 걸 들어보니까 이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 공덕이라고 하는 것들은 좋은 에너지는 여러 사람이 화합해서 만드는 거고, 그 화합된 공덕이 더 커지는 거예요. 제가 삼국유사를 좋아하는데 거기 보면 그 얘기가 있어요. 영묘사에, 그게 왕실 사찰입니다. 선덕여왕이 창건한 정부 시대 칠처가람지고, 왕실 사찰 영묘사가 있어요. 왕실에 어떻게 보면 제사 같은 걸 지냈던 것 같아. 영묘사라는 이름으로 봤을 때. 그런데 거기에서 양지라는 스님이 장육존상을 소조로 만들었던 것 같아. 흙으로 흙으로. 그랬더니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왔대. 그래서 향가가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게 풍요라고 하는 향가인데, 그게 삼국유사에 14개의 향가가 나오거든요. 그중에 하나가 그 향가인데, 뭐라고 나오냐면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사람들이 계속 밀려오는 거야. “업장 두터운 사람들 공덕 지으러 온다.” 이렇게. 그래서 공덕 갚음이라고 하는 거는 사실은 확연한 거고 제가 그 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수륙재라고 하는 게 화합한 에너지를 만들어서 모든 뭉친 것들을 풀어내는 국가와 개인의 마사지다’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그래서 ‘묶인 것들을 다 풀어내는 그러한 화합의 천도 무대다’라고 생각을 하면 되시겠고. 또 한 가지 말씀드리면, 제가 부처님 말씀에 그 얘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이 세상에 나를 따라가는 게 있다.>라는 얘기를 하시거든요. 이게 가족이나 이런 사람들도 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 하지만 결국 죽을 때 나를 따라가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업, 업, 내가 해오던 행위들밖에 없다. 내 행위의 누적이다. 그래서 선업을 쌓으면 그 선업에 의해서 좋은 데로 가고, 나쁜 업을 쌓으면 나쁜 에너지에 의해서 나쁜 쪽으로 서로 몰려서 안 좋게 되는 거고. 그래서 살아서 좋은 공덕을 닦으면 사람이 너그러워지고, 행복해지고, 양보할 수. 양보하는 거 되게 중요해요. 절에서 쓸데없이 잘 싸워. 절에서 방석 갖고도 싸우고, 자리 갖고도 싸우고, 밥그릇 갖고 싸우고, 그 무슨 초등학교 선 넘어오면 이렇게 지우개 자르듯이, 그런 거 하지 말고, 양보하면서 자신을 잘 가꾸어내고, 그리고 그런 걸 통해서 사후에 그 공덕으로 가지고 가서, 그게 곧 연장선상으로 가는 거예요. 잡아함경에 보면 그런 얘기가 있어. 마하남이라고 부처님 사촌 동생이고, 부처님이 출가하시는 바람에 석가족이 출가하시는 바람에 결국 석가족의 왕이 됐어요. 근데 이 양반도 나이가 좀 되니까 불안한 거야. 그래서 부처님한테, 부처님이 사촌형이거든요. 속가로는 사촌형이거든요. “부처님 제가 죽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불안한 거야. “어디로 갈까요?” 이렇게 물어보는 거야. 그게 한마디로 얘기해서.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나무는 나무를 베면 기운 쪽으로 쓰러진다. 반듯이 선 나무는 어디로 쓰러질지 잘 몰라. 하지만 한쪽으로 이렇게 기울어 있어.” 피사의 사탑처럼. “그러면 그 나무를 베면 반드시 그쪽으로 쓰러진다. 너는 이미 충분히 선업을 쌓아서 좋은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어져 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말씀도 마찬가지 말씀을 드릴 거예요. 여러분들이 우리 주지스님을 뫼시고 이런 수륙재 학교를 잘 이수하셔서 좋은 공덕을 많이 쌓고, 그러면 국가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행복하고, 그 선업이 무게 중심을 올바로 세워서, 여러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안온하고 행복한 그런 경계를 얻으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부처님이, 제가 부처님께 잠깐 빙의해서, 마하남에게 했던 그 얘기를 그대로 해드리면, 여러분들은 좋은 선지식을 따라서 그 가르침을 받아서 가면, 분명히 좋은 선업들이 많이 생겨서, 의심할 필요 없이 좋은 곳에 반드시 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이상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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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8월 16일 백중기도 5재 법문
도혜스님 2023-08-16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오늘 백중 기도의 5재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여러분들이 해마다 백중 기도를 하고, 백중을 이렇게 맞이를 하니까, 백중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백중은 목련존자와 관계된 재일이죠. 그래서 목련존자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아마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면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지옥에 계셨는데 그분을 제도한 방법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이 이 백중 기도가 있게 된, 백중이 있게 된 근원이 되겠죠. 그 목련존자는 신통력이 아주 대단한 신통제일 목건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지옥에 계시는 것은 확인이 됐는데, “어떻게 하면은 지옥에서 구제를 할 것인가?”라고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7월 15일 하안거를 마치고, 모두 그동안 공부한 내용과 자기의 경지를 부처님께 와서 질문을 하고, 또 앞으로 수행할 주제를 받고, 또 그날 7월 15일은 모든 대중 스님들이 자자하는 날입니다.- “그 자자하는 날, 많은 스님들께, 대중에게 백미 음식으로 공양을 올려라. 백미는 100가지의 맛있는 음식이란 소리입니다. 100가지의 맛있는 음식으로 그 대중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려라. 그렇게 공양을 올리고, 그 많은 대중 스님들이 어머니를 위해서 경을 읽어달라고 요청을 해라.” 이렇게 해서 첫 번째는 대중 스님들께 공양을 올린 공덕, 두 번째는 스님들께서 경을 읽어드린, 경을 읽어서 그 경을 읽은 공덕을 그 어머니에게 회향한 이 두 가지 공덕으로 어머니가 지옥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두 가지 공덕이 있는 건데, 그래서 이 백중은 승보공양을 주안점으로 하는 것이 원래 원점입니다. 그래서 지금 대만 같은 나라는 이 백중을 기해서 승보 공양을 대단하게 합니다. 그래서 천승재, 오백성재 해서 전 세계 다른 나라의 모든 큰스님들을 초청하고, 아마 우리나라의 큰스님들도 해마다 초청을 받아서 가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한번 그 공승재에 참석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이 백중은 승보 공양의 날이기도 합니다. 근데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이 백중 기도는 영가 천도하는 제사 지내는 데만 집중을 많이 하고, 승보 공양에 대해서는 많이 지금 여러분들이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백중은 까티나(Kathina) 기간이기도 합니다. 이 까티나 기간이라고 하는 것은 백중, 7월 15일로부터 한 한 달간은 스님들이 마음대로 신도님들에게 일반적인 스님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공양 받을 수 있도록 허용된 기간이에요. 예를 들면 지금 시대는 시대가 달라지고 또 우리나라는 기후가 사계절로 나누어져 있어서 겨울에는 속옷을 입어야 하고, 여름에도 속옷이 필요하지만, 그 당시 인도에는 이 옷이라고 하는 것은, -제가 입은 이 가사가 옷입니다.- 이 가사 세 벌, 발우 하나가 소지품이에요. 근데 이 기간에는 가사가 그동안 있다가 떨어졌다, 그러면 신도들에게 가사를 공양받고 또 떨어진 가사를 수리를 할 수 있다. 그것을 신도님들에게 ‘내가 이 다 떨어진 가사를 그냥 버리기는 아까우니까 좀 수리를 해달라,’ 이렇게 요청도 하고, 원래 가사 세 벌과 발우 하나를 소지해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만큼은 더 소지를 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왜냐하면은 이제 깁기도 하고 깁는 기간 동안 또 입어야 하고 빨아야 하고 이러니까. 그래서 이 한 달 기간 동안은 까티나 기간이라고 해서 계율적으로 스님들이 모든 신도님들에게 공양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기간이에요. 그것을 가치나이 기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승보공양이 가장 우선시된 것이 이 백중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는 백중이라고 하면 영가 천도에만 주로 집중을 하는 그런 문화로 지금 많이 흘러가고 있죠. 그래서 이 까티나 기간이라든가 승보공양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라고 생각이 되어지는데, 원래는 이 승보공양이 주가 된 것이 이 백중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하안거 공부를 마친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을 때 그 공양의 공덕은 무한하다. 그래서 살아있는 부모는 수명이 100세를 넘을 것이고, 돌아가신 영가는 위로 7대까지 무한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공덕을 쌓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 백중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는 신라 때부터 쭉 이어오면서 사실은 이 불교가 우리나라를 많이, 불교 문화가 우리 전 한국을 이끌고 간 그러한 시대였습니다. 이씨 조선 500년이 되기 전까지는, 불교 문화가 우리나라 전체가, 모든 민중을 이끌어 나간 그러한 시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우리나라 전국을 다녀보시면 전부 다 불교문화입니다. 불교문화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근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이씨 조선 500년을 거치면서 불교가 탄압을 받아서, 이 불교가 전부 다 산중으로 들어가게 됐고, 그리고 또 이씨조선을 지나면서 시대가 이렇게 급변화하게 되면서, 기독교나 천주교나 이런 다른 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돼서 지금은 이제 많이 좀 달라졌습니다. 불교문화가 모든 것을 이끌었을 그때 시대에는, 이 백중이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하루 휴식하는 날이었어요. 여름 내내 땀 흘리고 농사를 지어서 이 백중 기간이 되면은 논도 거의 매고, 한창 더운 기간이니까 하루 정도 휴식하는, 그래서 남의 집에 머슴을 사는 사람도 이날만큼은 휴가를 얻는 노동절이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백중, 백종이라고 이름 지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백중이 불교의 아주 큰 명절로 이어져 왔는데, 신도님들이 이렇게 저에게 묻습니다. 뭐라고 하냐면, “스님. 해마다 백중이 돌아오는데, 해마다 우리 조상님들을 영가 천도를 올립니다. 근데 뭐 한 몇 년 하면 되지, 해마다 해야 됩니까?” 아마 여기 앉아 계신 분도 그런 생각하신 분 더러 계실 것 같아요. 그죠? 해마다 왜 그러면 백중 기도를 해야 하는지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뭐냐. 여러분들이 잘 살고 싶어 하잖아요. 잘 살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복 많이 받고 싶어 합니다. 그게 여러분들이 이 사찰에 온 주목적이잖아요. 스님들은 머리를 깎고 이렇게 출가한 목적이 부처님 되기 위한 목적이에요. 그렇죠? 근데 우리 신도님들의 근본 목적은 뭐냐. 복 많이 받고 자손 잘 되고 이게 목적 아닌가요? 그렇죠? 그래서 오신 겁니다. 그래서 백중 기도도 하면 복을 많이 받는다니까 오시고, 또 무슨 기도를 하면 또 공덕을 많이 쌓는다니까 오시고, 이게 근본 목적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복을 많이 받으려면 복을 지어야 복을 받지, 없는 복을 받으려면 될까요, 안 될까요? 없는 복은 아무리 오라고 불러도 안 와요. 없으니까 올 수가 없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복을 지어야 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백중 기도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처님께서 그러셨어요. “부처님과 부모를 정성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 올린다는 그 마음 하나만 있다면, 여러분의 운명을 바꿀 수가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 그만큼 복이 크다라는 겁니다. 복이 없는 사람도 이렇게 백중 기도에, 백중 기도는 부모를 위한 그러한 기도입니다, 부모의 천도를 위해서 여러분이 정말 이 더운 여름에 이렇게 7.7이 49일 동안 기도를 하는 이 마음은 진정으로 복을 받는 그러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복 짓는 것 가운데 부모에게 잘하는 것만큼 복 짓는 게 없어요. 더이상은 없습니다. 제가 이제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맞아, 그래” 이러지만, 연세가 또 젊으신 분들은 긴가 민가, 이렇게 확실하게 믿어지지를 않는 이런 부분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근본적인 이유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부모는 친인자입니다. 친인자라고 하는 건 뭐냐. 내 자신이 있게끔 해준 분, 그러니까 나에게 명색을 주신 분, 명색은 명은 이름이고 색은 내 몸입니다. 나를, 나의 몸을 낳아주고 또 낳기만 한 게 아니라 이름을 지어줬죠. 뭐라고 지어줬습니까? 순자, 무슨 자, 영자, 이렇게 쭉 이름을 지어서, 아기를 낳았는데 그냥 아이라고 할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름을 붙여준 겁니다. 그래서 나에게 이름과 몸을 주신 분이 부모님이세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그런 생명체는 없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짐승도 그렇고, 벌레도 그렇고, 다 부모가 있어요. 알을 낳았든 아니면 태로 낳았든 간에, 이런 곤충이나 이런 종류들은 다 알로 나고, 새도 알로 태어나는 새도 있고, 또 태로 태어나는 새도 있고 종류가 다르죠. 알로 낳았든 어쨌든 그 낳아준 부모가 있다 이 말이죠. 알로 낳아서 그것도 알을 여러분들이 동물의 왕국 같은 거 보면, 다 이렇게 품어서 알이 태어나도록 부모가 애를 쓰잖아요. 그래서 태어나고 나면 또 어떻게 합니까? 벌레를 물어다가 그 새끼가 어느 정도 자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키웁니다. 새도. 우리 인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 자식을 낳아보신 분이라서 자식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아마 다 아실 거예요. 그래서 자식이 천방지축 철이 없다가 자기가 자식을 낳아보면 ‘자식을 낳는 게 이렇게 힘들고 어렵구나’라고 알아서 ‘참 우리 부모가 나를 낳는데 얼마나 힘들었구나,’ 또 ‘나를 키우는데 얼마나 힘들게 키웠구나’ 이것을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친인자를 무시하고 함부로 한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별로 좋지를 못해요. 그런데 지금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요즘 시대에 와서는 부모를 그렇게, 옛날에는 부모를 위해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상을 치르고 참 철저한 효를 했는데, 지금 시대에는 그런 게 많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부처님께서 ‘부모에게 잘하는 만큼 공덕이 없다’라고 한 그러한 이유가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에요. 그리고 부모에게 잘하는 효심을 가진 사람이라야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요, 제가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부모에게 잘하지 않는 그러한 사람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입니다. 자기밖에 몰라,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을 못합니다. 자기 이익만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성공을 할 수가 있느냐 이 말이죠. 예를 들면, 어떤 회사를 운영을 한다. 전 세계에 그 부자로 살고 있는 수많은 세계 1등, 부자 2등, 부자 3등, 이런 부자들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재벌이 많습니다. 근데 그러한 분들 다 보면 부모에게 불효한 분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만약에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고요.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자기 이익만 챙기고, 소비자의 이익을 요만큼도 생각을 안 하면, 그 회사가 망하겠습니까, 잘 되겠습니까? 망합니다. 금방 망해요. 요즘은 너무 이게 빠릅니다. 유튜브가 있죠, 뭐가 있죠, 인터넷으로 그냥 이 젊은 사람들은 딱딱 들어가서 치면 다 나와. 어느 회사에 뭐가 뭐가 잘못되고, 뭐가 잘못되고, 금방 다 압니다. 그래서 그 회사는 망하는 게 순간적이에요. 옛날하고 틀립니다. 그래서 지금 모든 그 회사를 운영하는 분들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편리하고,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이익이 될까를 먼저 생각해야만 그 회사가 존속이 될 수가 있어요. 나만의 이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는 절대로 성공을 못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저도 많이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마는, 제가 알고 있는 몇몇의 사장님과 회장님을 봤을 때도 참 부모님한테 잘해요.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잘하고 다른 사람의 이익도 생각한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이 순환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왜 그러냐. 이 세상, 이 우주는 모든 것이 주는 것으로 진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오늘 지금 햇볕이 바짝 났습니다. 태양이 이렇게 무한한 에너지를 여기에다 내려주고 있어요. 비가 계속 오다가 오늘 해가 났어. “너희들 돈 내놔.” 이런 햇볕 봤어요, 못 봤어요? 보신 분이 있으면 손 한번 들어보세요. 없죠. 태양은 무한한 에너지를 내려줍니다. 요즘 분들은 뭐가 생긴다고, 약을 바르고, 햇빛을 많이 피합니다마는, 태양은 모든 것을 살균해주고, 야채 등, 자라는 모든 것들이 태양이 없으면 자라질 못해요. 그리고 이제 지금 장마가 거의 끝났고, 태풍이 지나갔습니다마는, 그렇게 계속 비가 오고 날씨가 더우면 야채가 다 물러 빠집니다. 태양이 없으면 이 야채고 뭐고 생존이 안 됩니다. 바다의 물고기도 똑같아요. 태양이 태양 에너지를 바다에 넣어주지 않으면, 그러한 물고기들도 먹을 게 없어져요. 그러한 무한한 태양의 에너지를 주면서도 여러분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지금 숨 쉬고 있어요? 숨 안 쉬고 있어요? 이 공기가 여러분한테 “돈 내놔라” 합디까? 한 번 마시는데 얼마, 두 번 내쉬는데 얼마, 이런 공기, 산소를 봤습니까, 못 봤습니까? 못 봤죠.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는, 모든 것을 무한히 주는 것이 진리예요.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에 정말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여러분들이 전부 다 부모입니다마는,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합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그냥 고생이 돼도, 그 자식을 위해서는 다 배려를 하고, 참아주고 다 하는데, 자식은 그러지 못한 자식이 요즘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효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성공을 못합니다. 그게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이 효가 바탕이 돼야 해요. 그리고 요즘 보면, 자제분들이 부모님에게 사업 자금 대달라, 뭐 대달라, 뭐 이렇게 하는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제 외국을 보면, 딱 고등학교는 기본 교육이니까 부모가 책임지지만, 대학교부터는 “본인이 노력을 해서 가라.” 이렇게 부모들이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자식에게 사업 자금을 대준다거나 이런 일이 절대로 없다고 해요. 그 반면에 부모도 자식에게 의존할 생각을 안 하거든요. 근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그러한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런 자식들이 끝까지, 50, 60이 돼서도 부모를 ATM 기계로 생각하고 돈만 없으면 쫓아와서 달라는 거예요. 사업 자금 한다, 뭐 한다 하고, 안 주면 뭐가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이제 그렇게 달라고 할 때는 와서 지극히 잘해. 그냥 뭐 맛있는 것도 사다 드리고, 뭐 어쩌고 저쩌고. 이제 부모가 “아이고, 그러면 그렇지. 내 자식인데, 그럼 그렇지” 하고 이제 호주머니 다 털어서 주고 나면 그걸로 끝이에요.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한 예를 들어보면, 그렇게 이제 탈탈 털어서 다 주고 나면, 부모님은 생활비가 없는 거예요. 없어서 그야말로 노후에 고생하시는 분이 한두 분이 아니에요. 제가 직접 본 예입니다. 어느 분이 70이 넘어서 70 후반까지 직장생활을 했어요. 이제 그때까지는 직장생활을 했으니까 먹고 살았고, 그다음에는 그 퇴직금을 가지고 나머지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딱 퇴직하는 날 며느리가 쫓아와서 “아버님, 제가 뭐 식당을 하는데 뭐가 안 되니까 퇴직금을 저한테 주시면은 제가 부모님의 생활비를 매달 꼬박꼬박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아버지가 아들 같으면 그래도 안 된다라고 할 수가 있었을 텐데, 며느리가 그러니까 이 시아버지가 꼼짝 못 한 겁니다. 그냥 한 푼도 못 남기고 그 퇴직금을 퇴직하는 그날 바로 며느리한테 다 줬어요. 이 며느리가 가져가서 식당을 제대로 못해서 이 부모님이 지금도 고생하고 계세요. 그 처사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그게 벌써 20년 넘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이제 부모님의 돈을 그렇게 가져갔다. 가져가서 장사를 해서 한 달에 1만 원을 벌면 1만 원에서 3천 원은 부모에게 드리고, 7천 원 가지고 내가 생활을 한다라고 그렇게 실천을 하면, 그 사람은 장사가 잘 됩니다. 이건 정확한 거예요. 여러분이 한번 시도해 보세요. 그러면 한 두 달 정도 하면 그다음에는 월 매출이 1만 원이 아니라 10만 원이 되고, 10만 원이 시간이 흐를수록 100만 원이 되고, 이렇게 점점 불어나요. 근데 이 가져간 자식은 조금 더 벌어서 돈이 좀 돌면 부모한테 드려야지 하고, 안 줘요. 그러고 계속하면 점점 매출이 1만 원이 아니라 7천 원으로 빠지고, 5천 원으로 빠지고, 안 됩니다. 이게 원리예요. 그래서 이제 이 젊은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예를 들어 저기 한 달 매출이 1만 원이다. 그러면 이 돈 가지고 내가 어떻게 하나, 조금 더 벌면 조금 더 벌면 부모를 드려야지, 그러다 보면 안 되는 거예요. 근데 만 원 중에 3천 원은 부모님을 드리고 내가 7천 원 가지고 어떡하든 이걸 이끌어 나가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뛰면, 크게 불어납니다. 이게 실전이고 실례예요. 근데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아. 좀 더 벌면 돈 더 벌면 이러다가 결국은 자신은 망하고, 부모님은 생활고에 허덕여서 그야말로 병을 얻어서 치료도 못하고 그러다 돌아가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백중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를 하시는데, 살아계신 부모님에게도 잘해야 됩니다. 살아계신 부모님에게 잘하는 것이 가장 복전이에요. 돌아가신 부모 천도도 해야 되지만, 살아계신 부모님에게 지극으로 하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천도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한 가지는 이렇게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 대두가 되는데, 여러분이 자식도 잘 키워야만 돼요. 왜 잘 키워야 되느냐. 자식에게 여러분들이 잘해준다고 물질로만 계속 잘해주다 보면, 결국은 이런 나쁜 자식을 만드는 겁니다. 효자를 만드는 것도 부모가 효자를 만드는 것이지, 다른 게 아니에요. 옛날에는 참 가난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좀 그래도 살만하죠. 근데 그 가난한 시절에 참 가난해서 밥도 먹기 힘들고 굶고 살고 이럴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고생하던 부모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시느냐. 나는 이렇게 고생하지만, 내 자식은 이런 고생을 안 시키고 싶다. 이래가지고 자식에게 무조건 돈으로만 잘해주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그 자식은 뭐가 되느냐. 부모를 ATM 기계로만 생각하지, 부모라고 생각을 안 해요. 그렇게 자라면. 그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돈을 버는 것이 얼마만큼 힘들다는 걸 그 자식도 알아야 되고, 그 ‘부모가 나를 키우기 위해서 이만큼 고생하고 힘드시구나.’ 이거를 그 자식이 알게 해줘야 되는 겁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재산으로 주는 것은 이 세상의 1%밖에 안 돼요. 여러분이 이 우주에 있는 돈을 다 갖다가 자식한테 준다고 하더라도, 그거는 1%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 가져가서 써버리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그 자식의 정신을 깨워줘야 됩니다. 정신을 깨워주어서 마음이 열리도록 해야 된다. 그렇게 하려면은 여러분이 그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말 정신이 열리도록 하려면, 자식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렇다고 해서 물질을 아예 주지 말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물질을 주되, 그 자식이 물질의 소중한 것을 알도록 그렇게 해주는데, 보면은 부처님께서는 이 못난 우리 중생들을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너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 ” 우리 각자 각자 중생들이 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라고 인정을 해 주시는 거예요. 아무리 못난 중생이라도. 살생하고 뭐 도둑질하고 온갖 짓을 다 하는 중생도 다 부처님의 품에 끌어안고 “너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라고 하십니다. 부처님 당시에 100명의 사람을 죽여서 손가락을 잘라서 목에 목줄을 꿰서 자기가 성공을 하겠다는 그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제도하기 위해서 부처님이 나타나셨는데, 부처님이 이제 100명째 사람이죠. 그 사람 눈에는 부처님이 100명째 사람이니까 부처님만 죽여서 이제 손가락을 얻으면 손가락이 100개가 되는 거죠. 그러면 이제 자기가 성공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부처님께 달려들었는데, 부처님이 이제 그 사람을 제도를 했습니다. 제도를 해서 이제 정신을 바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정신이 바로 돌아오고 보니까, 죄책감이 있는 거예요. 내가 99명의 사람을 죽였는데 참 이 죄업을 어떻게 하나. 늘 마음에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임산부가 난산을 하는 거예요. 요즘 같으면 아기 놓으려면 병원에 쫓아가서 난산이 되면 수술을 하든지 이러면 되지만, 옛날에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때 시대에는 난산을 하는 부인에게 수승하게 수행하는 수행자가 그 난산하는 어머니의 배를 만지면서, 축원을 해주면 그 난산을 벗어나서 빨리 아기를 낳는다라는 그런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100명을 죽인 이 사람이 그런 부인을 만나게 됐어요. 주위의 사람들이 이 사람 보고 “스님이 저 부인의 배를 좀 만져주십시오. 그러면 아기를 빨리 낳을 겁니다.”라고 자꾸만 권하는 겁니다. 근데 본인 생각에는 ‘내가 이렇게 사람을 100명이나 죽였는데 어떻게 저 사람에게 그런 공덕을 줄 수 있겠나.’ 못하는 겁니다. 아, 난 못한다고, 나는 아니라고 막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난산을 맞은 부인의 배를 만지면서, “저는 태어나고부터 한 번도 살생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자기가 양심이 있잖아요. 자기가 99명을 죽였는데 어떻게 한 번도 살생을 안 했냐 이 말이죠. 근데도 부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용기를 얻어서 그 부인의 배를 만지면서 “저는 태어나고부터 한 번도 살생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공덕으로 이 어려운 난산에서 아기를 아주 잘 낳길 바랍니다.” 하니까 바로 아기를 낳았어요. 이것은 부처님이 거짓말을 하신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부처님께 귀의를 해서 출가하고 난 이후부터는 살생을 안 한 겁니다. 다시 태어난 거죠. 어머니에게 몸을 받아서 태어났지만은, 다시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은 다시 태어난 거예요. 그렇게 부처님이 용기를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들의 자제분이 용기를 가지고, ‘정말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고, 너를 위해서 할 수 있고, 부모를 위해서 할 수 있고, 너의 능력은 무한하다.’ 이렇게 자식에게 용기를 주어서, 여러분의 자녀분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마음을 열도록 해주는 거. 마음을 열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 자기가 그 목표를 가지고 꿈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이렇게 길러야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자제분이 어머님 생일이다, 또는 뭐다 해서, 하다못해 어머님 위해서 뭐라도 좀 사가지고 오면, “아이고 너 살기 어려운데 뭐 하려고 이런 거 사 오냐, 사 오지 마라” 이러시거든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자제분이 그런 거 사 오면, “아이고 고맙다. 니가 이렇게 사오니까 내가 너무 좋다.” 그렇게 하시고 그만큼 또 돌려주시면 돼요. 그러면 되는데 보통 부모님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아이고 동창 모임에 갔더니 아무개 아들은 뭘 잘하고 뭘 잘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하냐, 뭐 아무개 딸은 어쩌고 어쩌고 직장도 좋고 학교도 잘 가고 공부도 잘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 계속 이렇게 비교를 해서 자기 자식의 기를 팍팍 꺾습니다. 그죠? 이러한 행동이라든가 이런 것은 자식의 앞길을 막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잘하는 것도 효도지만, 여러분이 자식을 잘 키워야 그 자식이 여러분에게 또 효도를 하게 만들어요. 그것이 이제 올바른 순환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여러분 자식을 대할 때 지혜롭게 대하려면, 이 지혜를 배우는 것은 부처님의 경전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바릅니다. 요즘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꿈이 없어요. 옛날에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의 모든 학생들이 변호사가 되고 싶다, 의사가 되고 싶다, 뭐가 되고 싶다, 이런 꿈이 있었습니다. 근데 요즘 애들은 꿈이 없어요. 왜 그런가라고 생각해 봤더니, 부모님이 전부 다 물질적으로 만족하게 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자기가 필요한 게 없어. 그러니까 아무 꿈이 없어. 그렇게 자란 아이는 커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하고 싶지도 않고, 하면 힘들어. 부모님이 너무 편하게 키워서 조금만 뭘 하면 힘들어서 도저히 못 하는 거예요. 참을 힘도 없어서 회사에 들어가서 1개월 못 버티고 나옵니다. 2개월 못 버티고 나오고. 그러면 이제 그 뒷바라지는 또 부모님이 다 하는 거죠. 이러한 시대가 되면 이게 거꾸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백중을 기해서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거, 자식을 또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키워야 되는가, 이것도 여러분들이 공부를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혜의 가르침이지, 중구난방의 가르침이 아니에요. 부처님은 지혜를 여러분들이 깨우치고 지혜를 열어가면 여러분들의 삶에 정말 어렵고 힘든 것이 쭉쭉 펴서 바르고 행복하고 이러한 것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식을 그렇게 키우되, 또 이제 여러분들이 뭐를 고쳐야 되느냐 하면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를 버려야 됩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이 생겨요. 자식을 키울 때 여러분이 3살, 4살, 5살 이럴 때 그 빵긋빵긋 웃는 아이를 보면서 얼마나 즐거웠습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자식은 벌써 여러분에게 줄 것을 다 줬어요. 그걸로 끝나야 됩니다. 근데 부모님은 끝까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물고 늘어져요. 이러면 안 됩니다. 마산에 어떤 분이 아들을 넷을 뒀는데, 전부 다 외국 유학을 시켜서 다 결혼시키고 했어요. 아들이 일본 유학할 때 혹시라도 학교에 내는 돈을 못 내서, 일본에서 일본 학생들한테 또는 교수님들한테 무시를 당할까 봐 이 아버지가 건어물 장사를 했어요. 그래서 발을 동동 굴리면서 그 돈을 맞춰서 보내고 생활비 보내고 이렇게 정말 피땀을 흘려서 키웠는데, 자기가 나중에 늙어서 아들 넷이 전부 다 장가를 들어서, 뿔뿔이 다 외국에 가서 살고, 이 아버지는 아들 며느리를 쳐다 볼 수도 없고, 그리고 나이는 들어서 이제 시골에 떡 앉아서 생각하니 기가 딱 막히고, 아주 그냥 괘씸해 죽겠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나 슬프고, 한탄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시골집이니까 제비가 집을 지어서 새끼를 깠어요. 그 새끼가 다 자라 제대로 날아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기가 마음을 돌렸다는 겁니다. 저런 짐승도 새끼를 키워서 다 저렇게 독립을 시켜 보냈는데, 내가 인간인데 자식을 키워서 다 독립시켰으면 끝이지, 내가 이렇게 슬퍼하고 고생할 일이 아니다. 이래서 마음을 훌훌 털고 그 뒤로부터는 아주 마음을 쾌활하게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실화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그런 마음을 버려야 돼요.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먼저 첫 번째는 효도하는 문제를 말씀을 드렸고, 두 번째 백중을 해마다 해야 하는 근본적 이유는 뭐냐. 우리 인간은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체를 가진 모든 존재들은, 나홀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어요. 모든 것과 관련이 돼서 모든 것들의 은혜를 받았다 이 말이죠. 조금 전에도 제가 말씀드렸죠. 태양의 은혜를 받고, 산소의 공기를 우리가 돈 한 푼 안 내고 마시고, 또 바람도 그렇고, 이 천지 우주의 은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입고 입는 옷, 여러분이 직접 베틀에서 짜서 입은 게 아니잖아요. 물론 여러분이 돈 주고 샀어요. 그렇지만 파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돈 주고 사겠습니까? 그렇게 본다면 전체가 얽혀 있습니다. 전체 모든 사람들의 은혜로 인해서 여러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은 여러분들은 그 모든 천지의 은혜를 갚아야만 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한다면 여러분들이 해마다 백중의 기도를 해도 다 갚지 못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면은, 우리가 다생겁래로 윤회를 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수없는 윤회를 거치면서, 우리 부모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부모, 9대, 몇 대의 부모까지 다 따져서 천도를 한다면, 해마다 백중 기도를 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그리고 그 부모 중에 어느 한 분이라도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분은 지옥의 고통이 너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면, 어느 인연 골이라도 잡아서 내가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라고 간절하게 원하고 있을 때, 여러분이 백중 천도를 해드려서 그분의 고리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이 백중 기도는 해마다 해도 모자라요. 그러면 여러분 생각할 거예요. 계속 이렇게 조상을 위해서 천도만 하면 나한테 떨어지는 건 뭐냐. 나는 뭔 이익이 있냐. 이익이 있어요. 뭔 이익이 있느냐. 여러분이 백중 기도를 해마다 하면서 내 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일체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서 천도재를 한다면 그 마음이 바로 복 받는 마음이에요. 그러한 마음은 정말 무량한 복을 끌어들이는 그러한 공덕과 복이 되는 겁니다. 내 부모만 아니라 나로 인해서 어떤 관계가 지어졌든, 지나가다가 옷깃이라도 스쳤다면, 그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면, 내가 지금 이 백중 기도하는 이 공덕에 10분의 1, 100분의 1이라도 그분에게 주어서, 그분이 고통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면 여러분은 정말 무한한 복을 받는 거다 이 말이죠. 그리고 우리가 이제 조상을 이렇게 천도한다라는 것은 나를 위한 벽을 치는 겁니다. 집에 담장을 치는 것처럼 나에게 오는 재앙을 막아주는 어떤 벽을 치는 거와 같다. 그래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모든 담장을 내가 든든하게 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여러분의 기도로 공덕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중에 어느 사람이라도, 어느 분이라도, 영가가 됐든 살아있는 사람이 됐든,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고, 여러분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사람뿐만 아니라 귀신, 일체 모든 영가들, 이런 분들이 전부 다 여러분의 도와주는, 재앙을 막아주는 그러한 장벽이 되어준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더운 날 백중이 이제 오늘 오재가 됐는데, 남은 기간 동안 정말 마음을 다해서 기도를 열심히 하신다면,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것은 다 성취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열심히 기도 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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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9일 백중4재 법문
자현스님 2023-08-09
안녕하세요. 제가 사실 진관사를 세 번째 온 거거든요. 예전에 불교학회 때 한 번 왔었고요. 그다음에 <나랏말싸미> 촬영한다고 왔었는데, 저는 올 때마다 굉장히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게 비구스님들도 잘 못 하는 거고. 부처님 말씀에 그런 게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얘기인데, <수행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간다.> 보통 모든 향기는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데, 그 사람의 진실한 어떤 에너지야말로 바람을 거슬러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라고 하는 그런 말씀이신데, 초기경전에 나오는 얘기거든요. 잡아함경이나 이런 데 나오는 얘기인데, 이게 원력이라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서울 사람으로 이 동네가 상태가 별로 안 좋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렇게 보면. 그런데 여기 들어오니까 이 법당 안에 모나미 볼펜이 가득 차 있네. 말귀를 못 알아들어(웃음). 여러분이 모나미 볼펜 같아요, 딱. 이렇게 복장을 갖춰서 저는 처음에 무슨 독립운동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여기가 예전에 백초월 스님 태극기가 발견됐다고 그래서 이게 또 독립운동의 성지인가 이렇게 생각했다니까. 유관순도 아니고 깜짝 놀랐어요. 이런 작은 절이 사실은 여기가 왕기가 서린 유서 깊은 절이에요. 제가 왕기설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오대산 상원사나 이런 데도 좋아하고. 그리고 여기는 회주스님이 탄허노스님께 가르침을 받으신 어른이시기도 하고. 그리고 여기 또 다 아실 거 아니에요. 여기가 천추태후가 현종을 이렇게 죽이려고 했을 때 진관스님이 구해줘서 결국 절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왕기운이 서려 있는 데는 원래 옛날부터 절이 아니더라도 절로 만들어요. 그게 강화도 행궁 그쪽에 철종 살던 데도 나중에 궁이 됐고. 궁이 되거나 절이 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운현궁도 그렇게 해서 궁을 만들어 버렸고. 중국 같은 경우는 옹화궁, 북경에 가면 옹화궁이라고 있어요. 거기는 황제가 되고 나서 절로 만든 거예요, 예전에. 그러니까 왕기가 있는 데는 일반인이 살 수가 없어. 그래서 절을 만들거나 궁을 만들거나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유서 깊은 데를 비구니 스님이 불사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근데 큰 원력으로, 그게 이제 수행의 향기, 원력의 향기예요.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냐면, 제가 90년대생이긴 한데(웃음), 나이 50이 넘어가면서, 제가 저 아는 스님들하고 몇 명하고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이게 우리가 먹고 사는데 더 이상 진력해서는 너무 인생이 추접스럽다. 예전 같으면 갈 나인데, 죽은 뒤의 나이까지도 자꾸 먹고 사는 데 집착한다는 것은 너무 좀 그러니까, 우리도 포교를 하든지 원력적인 삶을 살자. 여기는 이제 다 갔다고 생각하고, 50까지로 다 살았다고 생각하고.” 여러분도 다 가신 나이에요. 제가 그런 얘기하거든요. 신사임당이 마흔일곱에 죽었고, 율곡이 마흔여덟에 죽었어요. 우리 나이로 마흔아홉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죽는다는 이야기는 평생 다 산 거예요. 그리고 나머지는 보람으로 살아야지, 욕심으로 사는, 그러니까 젊었을 때는 출세도 해야 되고 뭐도 해야 되고 이런 욕심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거를 나이 먹어서까지 계속 유지한다는 거는 너무 슬픈 거예요. 인생이. 그래서 그런 거 말고 삶의 전환점을 마련해서, 뭔가 보람되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일들을 좀 해보자. 개인적으로는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돈에 종속돼서 나이 먹어서까지 그렇게 산다는 건 제가 보기에는 조금 그런 것 같아요. 너무 슬픈 거지. 그래서 원력적인 삶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한 사람 원력으로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비구스님으로서는 부끄럽습니다. 제가 봉은사 소임도 살아봤지만, 그런 절도 계속 저러고 있는 것도 너무 슬프죠. 그래서 위험한 발언일 수 있는데, 1년 결산이 나오거든요. 그게 뭐 대단하대. 그래서 내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여기에다 주차장 만들어도 이거보다 더 나와요.” 내가 이랬어. “그냥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 타워를 만들어서 1년 돌리면 그거보다 수익이 더 나와.” 이게 뭔가요 싶지요? 그래서 이게 조건이라기보다도, 사람의 원력이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절이 이 진관사가 아닌가 싶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송광사도 되게 좋아하거든요. 송광사. 제가 경부선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송광사에는 못 가는데(웃음), 제가 송광사를 굉장히 좋아해요.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면 고려가 수도가 개성이에요. 개경. 지금 서울보다 더 위쪽이잖아요. 우리 개성공단 할 때 거기잖아요. 거기서 송광사, 순천이 진짜 제일 끝입니다. 거리상으로 봤을 때 북쪽은 그렇게까지 멀지 않잖아. 국경이 고려 국경은 조선 국경보다 더 짧거든요. 그런데 맨 끝에 거의 땅끝까지 최남단까지 간 거예요. 거기서 수행결사 운동을 지눌 스님께서 펼치신 거고, 나중에 한 2~300년이 흐르니까 고려 말이 되면 기록에 그렇게 나옵니다. <동방 제1 도량 송광사>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나옹 스님, 혼수 스님, 무학 스님 같은 분들도 다 송광사 주지로 들어가요. 이유가 뭐냐 하면 송광사 주지를 못하면 인정을 못 받아, 그 정도로. 그때 고려에서 제일 큰 절은 흥왕사입니다. 흥왕사. 수도에 있는, 개성에 있는, 요즘으로 말하면 조계사나 봉은사 같은 절이에요. 거리상으로 비교가 안 되는 거리에 있어. 그런데 그걸 원력으로, 큰 스님 원력으로 역전시켜서 바꾼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한 절에 본사가 2개가 있는 데가 금강산의 유점사, 예전에 건봉사 이렇게 있었고, 산 내, 산 외에. 그다음에 조계산에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에 송광사, 선암사가 있습니다. 그게 굉장히 유서가 깊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절이 비구니계의 송광사가 안 되겠나 싶은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게 혼자서는 절대 못 합니다. 그 밑에 스님들이, 어른 스님도 잘 하셔야 되지만, 사실 밑에 스님들이 이거 갈아 넣으면서 가는 거예요. 진짜. 그래서 아니 그걸 원한 건 아니고, 이러한 원력에 여러분들도 사실 이제 살 만큼 사셨으니까, 보람 있는 삶으로 인생을 잘 회향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저는 그런 얘기해요. 복지관이나 이런 거 다 필요 없다. 왜냐하면 막상 지금 여러분 연세에는 나이 먹으면 복지관에 가고 요양원에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막상 그 나이가 되잖아요. 못 움직입니다. 돈이 있는 분들도 못 움직입니다. 이유가 뭐냐면 두 가지 때문에 그렇거든요. 하나는 내가 갔다가 다시 못 온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갈 수는 있지만, 요양원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어. 죽어야 나온다. 그래서 그게 너무 큰 부담인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좀 젊었을 때는 ‘그게 그렇게 되는 거지. 인생이라는 게 어떻게 되겠어. 그러면 자식이 나를 품고 살 거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 상황이 되면 그게 안 움직여. 발이 안 움직여. 그리고 아무리 시설이 좋은 데로 들어가도 가보면 다 나보다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 근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같은 상태인데, 내 눈에는 내가 제일 상태가 좋아. 그래서 거기에 그런 분들하고 같이 있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분이. 진짜. 그래서 이렇게 발을 못 떼더라고. 말은, 입으로는 건강하실 때는 계속 그렇게 얘기했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까 발이 안 떨어져. 마치 소 도살장 끌려가듯이. 그런 모습들이 있어요. 주변에서 보시면, 제가 제 주변에 워낙 이렇게 또 삭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제가 잘 압니다. 여러분 정도면 지금 꽃띠입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게 저는 종교 단체, 종교 시설이라고. 여기는 이렇게 섞여 있잖아요. 막말로 얘기해서 자녀분들을 여의고 나서, -거의 그게 제가 그런 얘기 하거든요.- 꼭 이혼을 안 했어도 독거노인 같이 살지, 서로 이렇게 밥 먹을 때만 잠깐 보고, 견우와 직녀 모드로다가 바뀌지. 밥 먹고 잠깐 기본적인 회화, 서로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기본적인 회화 몇 마디 하고 별로 대화 없죠. 절간보다 더 조용하다. 핸드폰하고, 핸드폰을 보거나, 테레비를 보거나 안 그러면 개하고 대화를 하거나. 제가 늘상 얘기하는 거 있어요. 나이 먹으면 개 언어를 배워야 된다. 같이 있으면 부부끼리 대화하는 것보다 개랑 말하는 게 더 많아. “어유 밥 먹었어요?” 이러면서 개하고 얘기를 한다니까. 남편하고는 얘기 안 해. 서로 간에. 그래서 개 언어를 못 배우면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근데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세요. 논어에도 그 말이 있어요. 공자에게 장저, 걸익이라는 은자, 그러니까 숨어 있는, 나는 자연인이다같이 사는 사람들이에요. “야. 안 될 거를 너는 왜 이렇게 힘들게 해. 어차피 세상은 네가 한다고 해서 안 바뀌어.”라고 얘기했을 때 공자가 뭐라고 얘기하냐면, “안 바뀔 거는 나도 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과 살아야지,” 개랑 살 수는 없잖아 이렇게 얘기합니다. 물론 ‘개랑 살 수’는 제가 붙인 겁니다. 근데 사람과 더불어 산다는 게 그게 쉽지 않아요. 연세 드시면 이게 다 흩어지기 쉽거든요. 그래서 이런 가까운데, 제가 월정사에 있는데, 월정사 같은 데서도 그렇게 됐으면 참 좋겠어요. 그런데 산사가 너무 멀어요. 월정사에 한 번 오라고 그러면 사람들이 큰 마음을 먹고 와야 돼. 나도 미안해. 아니 그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이런 가까운 데다가 이런 좋은 도량을 만들고, 그다음에 이런 선진식 스님들을 모시고 같이 갈 수 있는 거는 참 여러분이 복을 받으신 거예요. 그래서 연세 드셔서도 그게 막상 너무 연세 드셔서 오시면 절에서도 찬밥이다. 마일리지를 잘 적립해서 이게 실버, 골드 그다음에 플레티늄 이렇게 올라가는 거예요. 다. 그렇게 해야 이게 위치가 안 무너지지. 그래서 그렇게 같이 있으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젊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일찍 죽을 자신이 없으면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자기 자신을 단도리 하지 않으면 그게 너무 슬퍼지는 거예요. 그래서 집안에서 뱅뱅거리고. 진짜 마치 원룸에 사는 강아지 보셨어요? 나는 되게 슬프다고 생각하거든요. 원룸에 사는 강아지, 아니 젊은 애들이 그렇게 키워요. 그러면 직장에 일하러 나가면 하루 종일 소파에서 자빠져 있는 것 밖엔 없어. ‘언제 올란가’, 이러면서 이게 인생인가, 이러면서 이러고 있어요. 그러다가 발자국 소리 나면 딱 일어나서 대기하는 것처럼, ‘아이고 내가 이렇게 먹고 산다.’ 이러면서. 근데 너무 심심할 것 같지 않아? 그래서 개에게도 스마트폰을 지급하라.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드는데, 아니 연세가 드시면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개가 요즘 환경이 좋아져서 몇십 년도 살고 이런 개들도 있어요. 예전 같으면, 저희 어렸을 때 보면 7~8년도 살기 힘들어요, 사실. 마당에서 이렇게 굴러 댕기면 그랬었어요. 근데 지금 막 15년도 살고, 어떤 거는 20년도 살고, 나중에 신선 되는 놈도 있을 거예요. 개신선. 지금 그런 상황이 됐는데, 비극적인 얘기를 해 드리면,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야 되실 나이가 85세에서부터 거의 100에서 105세까지, 15년에서 20년을 그렇게 가야 돼요. 거동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기도하는 자세를 가지고, 기도가 곧 명상이에요.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들을 계속 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이거는 진짜 감옥입니다. 감옥. 그리고 이거는 누구한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얘기예요. 제가 어렸을 때 공부를 못해 가지고 집안에서 별로 안 좋아했어요. 저를 되게 안 좋아했는데, 우리 형들은 되게 공부를 잘했거든요. 그래서 다 좋은 학교를 나왔어요. 좋은 학교 좋은 과를 나왔는데, 근데 지금은 저희 형들이 다 저를 부러워하죠. 왜냐하면 거기는 정년이 있어. 그러고 나와가지고 놈팽이야. 공부 잘하는 사람이 나오면 재취직도 잘 안 돼요. 이게. 그러니까 현장에서 하시는 분들이 재취업도 되지, 이렇게 펜 굴리던 사람들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잔소리, 유튜브 보면서 악플 달기 이런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우리는 정년이 없잖아, 이게. 우리 스님 오래 가신다. 주지 스님만 잘 보여.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 스님들 잘 모시고, 좋은 도량에서, 왕기가 서린 좋은 도량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시면, 여러분들도 인생이 잘 풀리고, 궁지에 몰렸던 왕자가 기사회생을 해서 왕이 됐는데, 그런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겠지, 그걸 이제 빨아야지, 이렇게. 우리 집으로 이렇게 잘 당겨 가시고. 그리고 여기가 또 수륙사였었잖아요, 옛날에. 수륙도량. 그래서 삼화사, 그다음에 오대산 상원사도 수륙 사찰이었었어요. 그래서 이런 수륙도량에서 이런 백중을 맞아서 기도한다는 것도 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예전에 꼰대 같은 얘기를 하나 하면, 삼종지도라고 거지 같은 말이 있죠, 조선시대 때. 어렸을 때는 아버지 말을 듣고, 젊어서는 남편 말을 듣고, 갈 참이 돼서는 아들 말을 듣는다. 근데 지금은 시절이 바뀌어서 3대 행복이 있죠, 3대 행복이. 그게 어렸을 때는 부모 카드를 쓰고, 젊어서는 남편 카드를 쓰고, 이제 나이 먹어서는 자식 법인 카드가 하나 오면, 이거같이 행복한 게 있겠나 싶어. 게다가 한도도 좀 없고 이러면 더 좋지. 그런 분을 기리는 명절이 우란분절이에요.(웃음) 진짜라니까. 우란분절에 이제 두 가지가 있어요. 이 우란분에 천도하는 게 두 가지 의미가 있어. 하나는 목건련 존자하고 관련된. 인도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제가 여기 이 절에 와서 우리 주지 스님한테 “여기는 그러면 기도 기간에, 백중 기도 기간에 어떤 경전을 하세요?” 그랬더니 부모은중경을 한대요. 그런데 그건 내가 밝힌 거거든. 뭘 밝혔냐면 인도의 효는 전부 여성 중심 효예요. 동아시아의 효는 남성 중심의 효거든요. 그래서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다. 그게 남성 중심 구조를 얘기하는 거야. 아버지가 낳긴 뭘 낳았어. 엄마가 낳고 엄마가 길렀지. 아버지가 뭘 낳았어. 그리고 예전에는 형편 좋은 집 그러니까 양반집 아버지는 그냥 뻐꾸기여. 잠깐 왔다가, 뭘 하는 것도 없어. 바람이나 피울 줄 알지 뭘 했겠어. 그게 현실이거든요. 근데 왜 아버지가 날 낳았다라고 얘기하냐면 부계 씨족제, 아버지 성을 따르기 때문에 그래요. 아버지 성을 따르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들 같은 경우가 예전에 제사 같은 거 지내고 할 때, -집에서 아직도 지내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거 할 때 보면 제수는 며느리가 다 하고 며느리는 참석 불가죠. 왜? 성씨가 다르니까 그게. 그런데 인도가 굉장히 재미있는 게, 인도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효만 강조하지, 아버지에 대한 효 나오는 데가 없어. 굉장히 재미있어요. 부모은중경도 봐봐. 부모은중경도 보면, 부모은중경 내용이 다 필요가 없습니다. 어버이 은혜, 양주동 박사가 이렇게 작사를 했거든요. 작사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어쩌고저쩌고. 그 어버이은혜라는 노래가 부모은중경을 압축해 놓은 거예요. 당신이 감명을 받아서 그걸 추려서 가사를 적었다고. 그런데 그게 원래 이름이 어머니 은혜입니다. 어버이 은혜를 자세히 들어보면 아버지 얘기가 없어요. 부모은중경은 처음부터 어머니 뼈 얘기부터 시작을 해. 동아시아 같으면 그게 아버지 뼈로 나와야 돼. 어머니 뼈부터 시작을 하는 거야. 이것만 그러는 게 아니야. 목건련이 구했던 대상도 어머니입니다. 지장경을 봐도 어머니를 구제하는 거예요. 아사세왕이 빈비사라 아버지를 죽이고, 그때 유폐를 시키거든요. 이렇게 금고, 가둬버리는 거죠. 왜? 직접 죽이는 게 너무 부담스러운 거야. 약간 눈이 멀어서 구테타를 일으켰어도, 아버지를 죽이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유폐시키고, 이제 굶겨 죽이는 걸로 ‘내가 밥 넣어들이라는 얘기를 까맣게 잊었네.’ 이제 이렇게 하려고 했던 거지. 죄의식을 조금 벗어나려고. 엎어치나 매치나 아닙니까? 다르지. 좀 다르지. 이렇게 이제 백중 때 같은 때도 이런 거 있잖아요. 제가 말씀드리기 죄송하긴 한데, 너무 좀 아픈 사람을 긁는 것 같아서 죄송하긴 한데, 그게 수자령에, 유산되는 경우도 있고, 예전에 우리나라가 못 살 때, 산아 제한해서 둘 이상 못 낳게 해서 인공적으로 유산하신 분이 있어요. 나 그거 진짜 잘못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근데 그냥 유산이 된 거 하고, 유산을 시킨 거 하고 느낌이 다를 수 있죠. 이게 같을 수는 없죠. 여자분들인데도 동의를 안 하네. 나는 다를 것 같은데, 그냥 생각을 해봐도. 그런 거 비슷해요. 그래서 그 부담을 덜려고 유폐를 시켰는데 엄마가 위데희 부인이잖아. 그래서 거기 가서 사식을 넣어주는 거지. 밥을 계속 넣어주는 거지. 경전에는 무슨 몸에다가 붙이고 갔다하는데, 필요 없습니다. 그냥 들고 갔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들고 갔을 거예요. 그러면 경비병이 막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왕비를 어떻게 막어. 못 막아. 못 막아. 그거. 막으면 왕한테 죽는 게 아니고 바로 왕비한테 죽어요. 못 막아. 그래서 그걸 계속 사식을 넣어주니까 아버지가 계속 안 돌아가시니까, 정치적으로 부담이 너무 되는 거지. 쿠데타 일으킨 사람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이제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다고. 그래서 칼을 빼어들려고 하니까, 그게 관무량수경 서품에 나오는 얘기예요. 제가 지어내는 게 아니고. 그랬더니 대신 월광 그때 쿠데타 세력이에요. 쿠데타에 가담한 세력이 칼을 잡으면서 “세상에 아버지 죽였다는 말은 많이 있어도 어머니 죽였다는 말은 없다.” 이런 식으로 하면 같이 못 간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까 칼을 다시 넣고, 안정을 해요. 그러니까 아버지 죽이는 데는 큰 부담이 없는데,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게 굉장한 효전통이 있다니까. 그래서 사리불도 어머니 이름을 딴 거잖아요. 아버지 이름을 딴 게 아니에요. 사리자가 사리가 엄마 이름입니다. 사리불 엄마입니다. 사리불 이름은 우바제사예요. 사리가 엄마 이름이요, 사리의 아들이에요. 부루나미다라니자, 부르나 존자도 그게 엄마 이름 딴 거예요. 누구의 아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의 아들. 그리고 오역죄에 보면 어머니를 죽인 죄가 첫 번째로 나옵니다. 그다음에 아버지를 죽인 거, 순서가 꼭 이렇게 나와요. 한 번도 뒤집어지는 경우가 없어요. 그래서 여성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게 인도 문화의 특징이에요. 인도 문화의 특징. 그래서 부모은중경을 이렇게 읽는다는 것도 그게 여성에 대한 효예요. 그래서 동아시아 전통에서 우란분절이 정착되는 이유가 있는데, 유교의 제사는 전부 남성 중심으로만 내려가게 돼 있어요. 같은 혈족이어야 되고, 밤에 지내니까 11시부터 1시 사이에 지내니까 다른 사람이 참석할 수도 없고, 참석이 불가능합니다. 집안 식구도 성씨가 다르면 참석이 안 되는데, 외부인이 어떻게 참석을 하겠어요. 그래서 우란분재나 이런 거는 제사가 아니에요. 재계예요. 재계. 밖으로 재자입니다. 이게 글자 자체가 달라요. 그리고 여기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할 것 없이 모두가 재주가 될 수 있고, 그다음에 내가 고마웠던 분들 그러니까 꼭 직계가 아니더라도 이모나 고모나 삼촌이나 이런 것도 다 가능하고 친구도 가능하고. 그리고 이제 결정적이었던 거는 자식을 제사 지낼 수 있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자식의 천도를 기원해 줄 수 있었다. 유교에서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어떤 부모도 자식 제사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 그래서 그런 일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 우란분재 기원과 관련해서는 목건련의 어머니 구하는 거잖아. 그 어머니가 나는 너무너무 부러워요. 이런 인생이 있나. 남편이 좀 일찍 갔는가 봐. 이것도 부럽지 않아요? 여러분 연세가 되면. 너무 공격적인가? 교양인은 대놓고 말할 수 없는데. 그런데 아들이 이제 소년 가장 같이 된 거지, 목건련이. 근데 아들이 수완이 굉장히 좋아요. 그래서 요즘으로 말하면 무역을 하는 거지, 이렇게 외국을 다니면서.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법인카드를 줬다. 이거 기가 막히지 않아? 그것도 한도가 없어요. 이거 너무너무 좋지. 생각만 해도 환희심이 나지 않아, 이게. 남편은 일찍 갔지, 아들은 효자에다가 돈을 잘 벌어. 그런데 바빠. 그러면서 법인카드를, 한도 없는 법인카드를 준 거,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 그래서 “어머니 좋은 일에 쓰세요.” 이랬더니, 어머니가 좋은 일에도 썼을 거예요. 거기 너무 극적으로 기록해서 그래. 좋은 일을 썼겠지. 왜냐하면 한도가 없으면, 나 같아도 좋은 일에도 쓰고, 재미있는 일에도 쓰고, 이러지 않을까. 계속 재밌는 걸로만 달릴 수 있을까. 인간이 그리고 사람이 재미라고 하는 게 노는 데에서 오는 재미도 있지만, 좋은 일을 하면서 오는 재미도 있어요. 그게 보람의 재미라는 거거든. 그런 걸 못 느껴봤으면 인생이 슬픈 겁니다. 진짜 그런 재미도 있어. 그러니까 남을 도와주면서, 안 그러면 위험한 것들을 이렇게 좀 거둬주면서 하는 그 재미도 있다니까. 있어. 그래서 젊었을 때는 몸이 건강하니까 이게 쾌락적인 즐거움, 그러니까 먹고 마시고 즐기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이런 게 재미가 있는 거고, 연세가 드시면 그렇게 따라갈 수가 없어.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좀 보람 있고 고등한 재미 쪽으로 가는 거거든요. 그게 복지라든지 문화적인 거라든지 이런 거예요. 그리고 목건련의 어머니는 제가 보기로는 그렇게 연세가 안 많았어요. 여러분보다 젊었을 겁니다. 이유는 옛날에 일찍 결혼했거든. 그리고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50대가 되기 전에 사람이 갑니다.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오십견을 몰랐다. 오십견 알기 전에 가죠. 여러분은 90견도 알게 될 겁니다. 구십견이 뭔지 압니다. 나중에 내가 인생이 이런 거구나. 그런데 진짜 수명이 확 늘어난 건 맞아요. 여러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참 이런 생각하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세상이 많이 바뀌지, 이런 생각. 60년대 평균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6명대입니다. 6명대. 지금 이제 올해 연말이 되면 0.6으로 떨어질 거예요. 6명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거야. 이게 가능한가? 내가 여기서 살아서 여기로 갔다고 라고 하는 게 하나 있고,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환갑이면 동네잔치였고, 그때 어르신이라고 여러분이 불렀던 그 사람들이 알고 보면 50대 후반이었습니다. 어르신 소리를 듣고 있었어. 그때. 근데 여러분들은 지금 저한테 꽃띠 소리를 듣고 있어. 환갑인데 꽃띠에요, 이렇게. 물론 환갑으로 보여요. (웃음)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니까 진짜로 받아들이지 말고. 환갑으로 보이고 고친 거 다 표납니다. 단지 덕담 해드리는 거예요. 덕담. 그래서 갑자기 수명이, 지금은 특별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연세 드신 분이 90 까지 올라가고요. 지금은 70대에 초상 나면 ‘뭔 일이래’를 물어보는 시절이에요. 아니 맞잖아요. ‘뭔 일 있었어?’ 이렇게 물어보는 시절이 된 거야. 80대 중반 정도가 그냥 일반 초상, 일반 초상. 그러면 어른 돌아가실 때 됐네. 이제 이 정도 생각하는 나이고, 여러분은 더 갑니다. 더 갑니다. 그리고 스톱 할 수 없어요. 그냥 가는 거예요. 이거는 그냥 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준비를 진짜 단단히 하셔야 돼요. 그래서 예전에 50 못 살았어요. 그래서 목건련 어머니는 즐겁게 사셨다더라. 누구 뭘로? 아들 법인카드로. 여러분도 그런 아들 두고 싶지? 그렇지 않아? 나도 그런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문제는 이제 그러다가 약간 선을 넘었던 거죠. 그게 혹약재연(或躍在淵)이라고, 이런 표현 써도 되는지, 연못에서 물고기가 튀어도 이렇게 튀어야지, 연못 밖으로 너무 세게 튀면 골로 간다는 거예요. 아니 물고기들이 이렇게 튀거든. 강에서도 보면 이렇게 튀고, 계곡에서도 이게 가끔 튀거든. 근데 그게 왜 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튀어. 근데 그게 연못 안쪽에서 튀어야지. 이거 너무 나갔다 이러면 되돌이킬 수가 없는 거야. 그러면 절단이 나는 거지. 그런데 선을 세게 넘었는가 봐. 그래서 돌아가시니까 지옥에 갔다잖아. 그래서 ‘우리 어머니 잘 됐을 건데’ 이러고 목건련이 생각을 해요. 나는 그 경전이, 목련경 우란분경 이런 데 나오는데, 그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해요. 거기 목건련의 어머니 이름이 박제돼 있어. 청제 부인이라고. 이거 인권상 안 되는 겁니다. 청제 부인이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헌법소원 같은 걸 내던지 뭔가 윤리위에 제청을 해서 이름을 삭제해야 돼. 요즘 살인범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나오는 세상인데, 아니 자기가 좀 이렇게 재미있게, 흥으로 좀 살았어. 그게 그렇게 큰 죄냐? 흥이 많은 게 죄야? 그런데 신의 한 수가 있었지. 그 청제 부인에게는 마지막으로 큰 보험이 있었던 거예요. 아들이. 그래서 아들이 결국은 자기가 못 빼고, 빼내려고 했으나 안 됐고, 결국 부처님한테 마스터 키를 얻어가요, 그게 부처님 석장이거든요. 부처님 석장은 고리가 12개예요. 12개. 1석장에 고리가 12개. 육환장이라고 그러잖아. 보통 지장보살은 고리가 6개, 부처님 건 12개예요. 그래서 그거 가지고 가서 결국 이제 빼드려. 자세한 얘기를 해드릴 시간은 없고. 30분만 하라고해서. 진짜 제가 여러 군데를 다녀오면서, 저는 보통 제 어깨에, 혹시 이렇게 자세히 보시면 귀신 앉아 있는 거 보여요?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있어가지고, 이렇게 한 번 틀면 1시간 반은 하고 잠깐 이렇게 쉬는데, 여기는 30분, 내가 이렇게 짧게 하라는데는 처음 봤네. 그러면 오지를 말라 하지, 뭐 하러 오라 해가지고 30분 만에.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또 사람들이 “그러면 더 해 주세요.” 이래놓고 뒤에 가서 욕한다니까. ‘너 때문에 밥 늦게 먹게 됐다’ 이러면서. 그래서 긴 얘기는 안 할 건데, 확실한 건 보험이 아주 기가 막힌 실비보험을 들어놨다는 거지. 그 실비보험의 이름은 무엇이냐. 아들입니다. 아들. 그래서 이게 무적이에요. 무적. 이게 아이언맨 슈트네. 그냥 막 끄떡없어요. 지옥에 가서 잠깐 굴렀다가 아들이 또 싹 빼주잖아.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들을 튼실하게 놨으면, 이런 데 와서 천도 안 해도 돼. 근데 내가 내 아들을 봤을 때 약간 부실한 것 같은데 이놈이 나에게 법인카드를 안 줬어. 그러면 이런 수륙사찰에 와서 이런 기도를 붙여야 돼. 우리 스님들이 인도자야, 인도자. 좋은 말로 하면 인로왕보살, 나쁜 말로 하면 앞잡이. 하지만 이게 극락으로 가는 앞잡이에요. 가이드. 실제로 부처님이 가이드예요. 그래서 예불문에 삼계 도사라고 하잖아요. 그 도사가 인도할 도자입니다. 우리가 아는 무슨 영환 도사, 무슨 이런 도사 아니고 인도할 도자예요. 우리를. 길 도자에다가 마디 촌자가 하나 더 있는 인도할 도자(導師)야. 그래서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고 진리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 부처님이에요. 그리고 그런 부처님의, 어떻게 보면 졸들이 우리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우리 스님들 같은 경우는 참 좋은 인도자, 이런 걸 불교적으로 선지식이라고 합니다. 선지식. 그래서 사람이 힘든 일도 있어요. 근데 제가 이렇게 보면 제일 힘든 게 뭐냐면 일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아마 여기 이런 거 불사하고 할 때도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여러분 해보시면 다 똑같을 거예요. 판단이 안 돼서 애매할 때가 있어요. 이걸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분명히 지금 요것과 요것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 근데 그 결정을 해야 되는데, 이게 잘 된 결정인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선지식이 있으면 그게 쉬워요. 그냥 따라만 가면 돼요. 그래서 예전에 무슨 말이 있냐면 <스승의 발밑은 시원하다.> 제가 그 말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저도 어쩌다 보니까 이제는 스승들이 대부분 갔어요. 그래서 홀로 받쳐야 되는, 땡볕을 맞아야 되는 슬픈 상황에 봉착해 있어요. 위에 어른들이 이렇게 많이 가시는 바람에. 근데 그게 위에 사람이 이렇게 딱 해서 일머리 있으신 분이 이건 이렇게 하세요 이렇게 하세요. 이렇게 하면 일이 굉장히 쉬워요. 그래서 그런 판단에 명석한 걸 사실은 문수보살이라고 하거든. 그래서 문수보살은 푸른색, 청량, 청량 그다음에 칼로다가 탁탁탁 잘라서 이렇게 매듭을 짓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날도 덥고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장경에 보면 그 얘기가 있잖아요. 돌아가신 분에게 천도한 공덕은 7분의 1이 절로 마일리지가 가는 거고, 마일리지의 7분의 6은 여러분들에게 와서 여러분들의 삶과 사후 세계를 평안하게 해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살아보면 다 필요 없어. 머리 좋고 무슨 뭐 인물 좋고 다 필요 없고 복 있는 놈이 짱입니다. 사람은 자고로 복이 많아야 돼. 복이 많아야. 이재용 회장님이 시험 봐서 됐겠어요. 전 세계에서 돈으로 제일 유명한 분이 누구예요? 만수르. 당신이 벌었어? 눈을 뜨니까 깔려 있네. 이게 복이에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셔요. 복이라는 건 아무리 많아도 이게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아나율 가사 이런 얘기 자꾸 하면 시간 가는데, 아나율 가사 기울 때도 “누가 내 가사를 기워서 복을 지을련가” 하니까 부처님께서 그걸 지어주시는 그런 대목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절에서는 복혜라 그래요. 지혜가 앞이 아닙니다. 언제나 복이 앞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그런 복이 있으면 일을 꾸미지 않아도 일이 돼요. 우리 같은 사람 복이 없으니까 맨날 일만 꾸미는데 뭐가 안 돼요. 아, 슬픈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나이 먹도록 동네방네 떠돌면서 조계종의 송해 같이 전국을 떠돌면서 살고 있잖아. 왕양명의 시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시 얘기. 그가 어렸을 때 7살인가 8살 때 썼던 천재적 시예요. 왕양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양명학의 시조인데.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달을, 밤에 달을 봤는가 봐. <달은 작고 산은 커 보이는데, 실제로 그거는 내가 여기서 봐서 그런 거고, 하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달은 크고 산은 비교도 안 되게 작을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이 이렇게 와서 이렇게 얘기를 해드리면 우리 같은 사람이 참 대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 여기서 상주하시는 스님들, 주지 스님 이하, 회주 스님 이하 상주하시는 스님들이 훨씬 더 대단한 분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가까이 있는 분의 고마움을 알고, 그것에 동참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생각들을 가지시면, 그게 곧 공덕이 되고 여러분들을 안온하게 하는 행복의 지름길이 될 거라는 생각을 믿어 의심하지 않으면서 오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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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2일 백중 3재 법문
지운스님 2023-08-02
반갑습니다. 백중 법회에 제가 초대받아서 법문하기는 처음입니다. 백중기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얘기이기 때문에, 제가 이제 여러분들에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은 윤회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고요. 그 다음에 이제 윤회를 얘기를 할 때는 반드시 열반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열반은 불사, 죽지 않는다는, 그런 것이거든요. 윤회한다는 것도 죽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다음에 이제 열반을 얻었을 때도 역시 죽지 않는다는 뜻이 있는데 이 두 가지는 극명한 차이가 있어요. 왜? 하나는 고통스럽다는 거고 하나는 즐겁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백중 기도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뜻이 있고요.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졌을 때 신심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인연을 해서 여러분들이 죽지 않는, 생로병사가 없는 열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제 차근차근 한번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죠. 우선 백중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제 은혜를 갚는 일이다, 부모님이나 조상에게 은혜를 갚는 일이다. 이 은혜를 갚는다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여러분들이 자기가 이 부모로부터 태어났다고 한다면은, 어머니 쪽에도 부모가 계시고, 아버지 쪽에도 부모가 계시고, 한 10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은 이 한 사람이 태어나는 데 있어서 과연 몇 명이 관여를 하고 있을까. 현재 여러분들이 여기에 태어나서 살고 있다면, 10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최소 1억 이상의 조상들의 은덕이 있는 거죠. 일억 명 되는 여러분들의 부모, 그 위에 또 할아버지, 할머니 이래서 태어난 거예요.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럼 여러분들이 당연히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 거는, 돌아가신 분들에게 기도드리는 것은 은혜를 갚는 일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고요. 그다음에 이제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 것 자체가 선업을 짓는 겁니다. 선업을 짓는 거고, 그다음 복을 쌓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거는, 핵심적인 것은 뭐가 있을까? 보통 이 백중 기도에서 천도한다는 것은, 우란분재라고 하고 우란분절이라 하기도 하는데, 목련경의 청제부인하고 관련이 있어요. 청제부인이 별로 계율을 잘 안 지키고, 살아있는 생명을 많이 죽였습니다. 음식으로. 진관사는 사찰음식으로서 전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찬탄을 보내고 있는데, 청제부인은 그냥 살아있는 생명체를 너무 많이 죽였어요. 왜 죽였느냐? 맛을 보기 위해서. 그래서 이제 아들이 그걸 알았어요. 그러고는 출가를 해서 이제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는가 살펴봤는데, 지옥에 계시거든. 목련존자는 신통이 있으니까 어머니를 구하러 갔어요. 근데 안 돼요. 자기 힘으로. 그래서 부처님께 하소연하니까 해제 날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고, 부처님께 법문을 청하라는 거죠. 그래서 이 부처님 법문을 통해서 이제 무간지옥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목련존자 목련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란분절이라 하기도 하고, 우란분재라 하기도 하는데, 바로 백중이에요. 말 얘기하자면은. 이 말은 뭘 얘기하는가 하면은 돌아가신 분들을 구제하는 길이에요, 백중 기도라는 것은. 그래서 이제 천도재를 지낼 때는 옛날에는 초도라는 말을 썼어요. 초도. 육도에서 벗어난다는 거죠. 벗어날 초, 넘을 초자에 길도 자.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 천상. 이 육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게 바로 천도재예요, 얘기하자면. 그런데 이렇게 지옥에 떨어져 있는 이를 구제하려면 한 번에 벗어날 수가 없어요. 업이라는 것은 한 번에 이렇게 없어지지를 않아요. 그래서 매년 이렇게 재를 지내주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깨달음을 얻어서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게 바로 천도재의 뜻이에요. 초도재라 해야 되겠죠, 그렇게 보면은. 그런데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해도 의문이 많이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내생이 있을까, 전생이 있을까? 우리가 이 백중 기도를 한다면은, 윤회를 한다면은, 전생과 금생과 후생이 이렇게 쭉 이어져 있기때문에 여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돼요. 초기 경전에 보면은, 여러분들이 십이연기를 얘기하는 것은 뭔가 하면, 십이연기가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 겁니다. 윤회의 길은 고통스러운 길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 고통이 너무 가중되고 이러면은 그런 마음을 먹게 되죠. 그런데 제대로 길을 찾아서 이렇게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을 해서 깨달음의 길로 가면 되는데,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이 부지기수 많아요.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그런데 어쨌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하는 이 윤회의 길이 고통스럽지만은, 뭘 의미하느냐.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일단 얘기를 해주고 있고, 그 다음에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 그 열반이 바로 죽지 않는다는 거죠. 불사라고, 번역을 죽지 않는다. 굉장히 중요하죠, 얘기하자면.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슬퍼하잖아요. 그런데 죽은 사람을 보면, 가족이나 또는 친척이나 지인이 죽었을 때 굉장히 슬퍼하지만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은 자기도 죽는다고요. 그렇잖아요. 그러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말하자면. 그래서 여기 백중기도를 기도만 할 게 아니고 여러분들은 명상도 겸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어쨌든 죽지 않는 이 길에 대한 얘기를 좀 더 심도 있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살고 있는 것은 본유(本有)라 그럽니다. 근본 본자에 있을 유자 쓰는데, 유는 생존이라는 뜻이에요. 죽을 때는 사유(死有)라고 합니다. 죽을 사자에, 있을 유자예요. 그다음에 죽고 난 뒤에 중유(中有)라고 합니다. 가운데 중자에, 있을 유자 또는 중음이라고 하죠. 다시 또 태어나는 것을 생유(生有)라고 합니다. 날 생자에, 있을 유자 씁니다. 그래서 이런 네 단계를 거칩니다. 그래서 살았다가 죽어서 중유의 세계에 있다가 다시 또 태어나는 거죠. 이렇게 반복을 하는 겁니다. 제가 오래전에 어느 스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스님이 그 날짜만 되면은 꿈속에서 제사상을 받는 꿈을 늘 꾸는 거죠. 일 년에 딱 한 번씩. 이 스님도 큰 스님인데 “이상하다. 꼭 이날 되면 내가 제사상을 받지.” 그리고 어느 날 꿈속에서의 그 절을 알게 됐어요. 근데 그 절에 사는 스님에게 물어본 거죠. “몇 월 며칟날에 큰 재를 지내는 것 같은데, 누구 재를 지내느냐?” 이러니까 “아무개 큰 스님의 재를 지내고 있습니다.” 전생에 자기가 그 절의 주지였고 큰 스님이었던 거죠. 그런데 이게 뭘 의미하겠어요? 생을 바꾸어도, 생을 바꾸어도 연결돼 있다는 거죠. 전부 다 연결돼 있기 때문에 설사 돌아가신 분이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동물로 태어나거나, 천상에 태어나거나, 어디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이 기도를 드리면 그대로 연결돼 있는 거죠.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백중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죠. 생명에 대한, 이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생명에 대한 근원에 대한 얘기를 좀 하죠. 그러고는 이제 중음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거시 세계를 얘기하는 학자는 천문학자들이죠. 미시 세계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양자 역학을 하시는 물리학자들이에요. 이 지구는 45억년 전에 형성이 됐다고 합니다. 이 태양계. 그러면은 우주는 언제부터 시작됐느냐면, 과학자들은, 천문학자들의 이야기는 138억 년 됐다는 거죠. 138억 년 전에 빅뱅이 일어난 거예요. 우주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형성돼 왔다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하면은, 밤 하늘의 별들이 끊임없이 멀어져가고 있다. 그래서 우주는 팽창해 가고 있다 하는 것은 최초의 빅뱅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 점에서 폭발해서,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데 여기에서 이제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이 우주에는 생일이 있구나.” 우주의 생일이 138억 년이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하죠. 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면은 이분의 이야기는 그런 거죠. 보이저호를 타고, 보이저호에서 찍은 지구를 보면 지구는 파란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근데 “그 작은 점, 우주에서 보면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 이 지구에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그러면 이 지구를 소중하게 여기고, 지지고 볶으면서 살 게 아니고, 서로 협력해서 지구를 잘 보살피면서 살아야 되지 않느냐 하는 식으로, 생명은 귀중하고 기적적인 것이다” 라는 걸 이 사람은 얘기를 해요. 그런데 제가 그걸 보다가 조금 화가 났어요. 제가 왜 화가 났느냐 하면은, 생명을 얘기할 때 단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에 한해서 얘기하고 있다, 형태를 가지고 있는 몸을 근거로 해서 생명체를 논하고 있다 하는 겁니다. 천문학자나 물리학자들은 마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어요, 얘기하자면. 이게 이제 문제죠, 말하자면. 그래서 이제 천문학자들에게 물어보면은 빅뱅 이전에 뭐가 있었느냐 이렇게 물어보면은 말을 못해요. 과학이 우리에게 다 해답을 주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왜 얘길 못 하느냐 하면, 빅뱅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 시간과 공간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는데, 빅뱅 이전은 시간을 얘기할 수도 없고 공간을 얘기할 수가 없다. 빅뱅 이전에 시공간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만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사람이 죽고 이러면, 물리학자들은 이 온 우주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원자로 영생한다. 기껏 하는 얘기는 그렇게 밖에 얘기를 못 하는 거죠. 이게 과학자들의 한계예요. 이제 옛날 큰 스님들은 그렇게 얘기를 안 하고 있죠. 그래서 함허득통 선사는 뭐라고 얘기하는가 하면은, 천지가 생기기 이전에 이것이 있었고, 천지가 생기고 난 이후에도, 천지가 소멸하고 난 뒤에도 이것은 늘 존재한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이것은 바뀌지 않는다. 현재 순간 늘 있고 수많이 흘러간다 하더라도 현재 순간에 벗어나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한 물건이라는 이름을 붙인, 어쩔 수 없이 한 물건이라 했을 뿐인데, 이게 바로 마음을 얘기하는 거예요. 이 마음이라는 것은 형태도 없고, 색깔도 없고, 물질이 아니에요. 근데 마음의 특성은 대상이 무엇인지를 아는 성질이 있어요. 일단 물질이 아니니까 생로병사가 없는 겁니다. 죽음이 없는 거, 생멸하지 않는 거예요, 이게. 근데 우리 마음은 늘 대상을 인식하면서 생겼다 사라졌다 반복하잖아요. 그 생멸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요. 이게 굉장한 거죠. 생멸을 하지 않는다하면, 생겼다 사라졌다 하지 않는다면은,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거예요. 이걸 옛날 스님들이 얘기를 하고 있고, 이게 쭉 내려온 겁니다, 지금까지. 달마스님하고 혜가 스님이 대화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래, 반연을 다 끊었느냐?” “다 끊었습니다.”“그러면 너 단멸에 떨어지지 않느냐?” 단멸은 끊어질 단자, 멸할 멸자. 다 소멸하고 없지 않느냐. “단멸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명명불매(明明不昧)하고 료료상지(了了常知)합니다.” 밝고 밝아서 어둡지 않고 또록또록하게 항상 아는 앎이 있습니다. 항상 안다는 거죠. 돈오입도요문론에서는 이걸 뭐라고 얘기하는가 하면은, 대상이 있어도 늘 보고 있고, 대상이 없어도 늘 보고 있다. 소리를 늘 듣고 있다, 소리가 없어도 늘 듣고 있다. 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 거죠. 그래서 금강삼매경에서 뭘 이야기하냐 하면, 의식이 한 번 탁 깨어나면 다시 매하지 않는다. 어두워지지 않는다. 이거는 불생불멸하는 걸 얘기해요. 이건 시간과 공간이 없어요. 시공간 속에 있으면서 이거는 늘 현현해 있는 거죠. 죽지 않는다. 눈을 뜨나 감으나 보는 마음이 바뀌지 않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피곤해서 눈을 이렇게 감고 있어도, 눈은 떠 있어요. 화가 나서 펄쩍펄쩍 뛰어도 그놈은 늘 그대로 바뀌지 않아. 슬퍼서 엉엉 울어도 이놈은 바뀌지 않는 놈이에요.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넘어선 거죠. 빅뱅 이전부터 있었던 거죠. 이게 생명의 근원이에요. 그래서 거기에 달라이라마 스님은 이렇게 우주의 기원을 이야기를 하고, 생명의 기원을 얘기할 때 마음을 빼놓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우주를 순환론을 얘기하는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얘기합니다. 이루어졌다. 빅뱅이 일어나 이루어졌다가 머물렀다가 파괴되고 사라져. 아무것도 없이 다 사라졌다가 다시 또 한 극점에서, 변곡점에서 빵하고 또 우주 빅뱅이 일어나서 또 이루어졌다가 머물렀다가 파괴되어 없어졌다. 반복한다는 거죠. 달라이라마 스님 말씀은 그런 얘기를 했어요. “빅뱅 이전에도 빅뱅이 있다. 한 번만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러면 우주는 이렇게 광활하고 큰데, 마음은 작은 것이 아닐까? 혹시 또 그런 생각하실 분 있죠? 대승기신론에서는 그렇게 얘기 안 해요. 등허공계, 허공의 세계와 같이 두루하다. 그래서 마음하고 허공을 이렇게 비교를 해보면, 공통점이 있고 다른 점이 있어요. 허공은 무한하게 크죠. 근데 마음도 허공과 같이 무한히 큰 겁니다. 무한이에요. 마음이 번뇌 때문에, 여러분들의 무지 때문에, 여기에 이 육체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이 생각되는 겁니다. 마음은 큰 겁니다. 그리고 허공은 생멸이 없듯이, 마음 자체가 생멸하지를 않아. 근데 다른 점이 하나 있어. 그게 뭐냐. 허공은 아는 성질이 없어요. 근데 마음은 아는 성질이 있는데, 그래서 진실식지라고 그래요, 대승기신론에서. 내가 이게 어리석어서 잘못 인식을 하든, 바르게 인식하든, 치매가 걸려가지고 대상을 인식을 하든, 술을 마시고 희미하게 인식을 하든 인식해서 아는 것은 진실한 것이다. 그것은 죽지 않는 놈이 돼. 그래서 상지라고 그랬어요. 항상 안다. 근데 허공은 그게 없어요.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은 허공이 궁극인 줄 착각을 해가지고 몸 다 때려 부수고 모두 없애서 허공이 되려고 하는 자들이 부지기수만 해. 그래서 능엄경에서 그런 자들을 유상 무식외도(有相 無識外道)라고 비판을 해버려, 부처님께서. 물질이 없는 걸 추구하고 있는 외도다 이거예요. 물질이 없는 걸 추구하는 생각이 있는 외도라고. 그런 자들은 가보를 받는다. 어떤 가보? 귀신의 가보를 받는다 이래요. 귀신은 아귀에 속하죠.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얘기하고 있는 거는 죽지 않는 것, 불사, 죽지 않는 거에 대한 얘기에요. 우리 마음의 본성이 열반이라고 그러죠. 니르바나. 열반은 불사라고, 죽지 않는다. 마음의 본성이에요. 그리고 반야라고 하기도 하고, 원각이라 하기도 하고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어요. 지금 현재 이렇게 돌아가신 분들 위해서 기도를 하고 이러지만, 자세하게 생각해보면은, 이 윤회한다는 것은 결국 안 죽는다는 얘기고, 그러면 왜 우리가 고통받을까를 생각하면은 우리는 이런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래서 십이연기에 보면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잖아요. 그럼 이게 딱 줄이면 어이 됩니까? 무명에 의해서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다는 거죠. 탐욕이 있으면 빨리 늙어요. 그래 보시를 좀 많이 행하고 오래 삽니다. 젊게 살 수 있어요. 화를 내고 이러면은 뼛속까지 병이 들어요. 이게 경전에 나오는 얘기예요.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자비심으로 대하고 이러면 병이 없어요. 어리석음은 죽음을 가져다주죠. 어리석음이 무명입니다. 밝음이 없다는 거죠. 근데 이것을 지혜로 바꾸면 안 죽는다는 거죠. 경전은 그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기도를 통해 가지고 죽지 않겠다, 열반을 구하겠다, 내가 열반을 얻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게 중요한 거죠. 이것이 진정한 백중기도의 핵심이 아니겠습니까?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가 죽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윤회를 한다고 하는 건 죽지 않는다는 말인데, 결국 우리가 백중 기도하는 것 자체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건 안 죽는다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죽는다고 죽어서 없어진다, 단멸이라고 그런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죠. 우리 죽으면 끝나는데 왜 기도를 해요.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인연으로 해가지고, 기도를 인연으로 해서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좋잖아요. 자 그러면은 간단하게 죽어서 다시 태어나 환생하는 과정을 얘기를 해드리죠. 이게 중요하잖아요. 사람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죽는다. 그러면 지수화풍, 제일 먼저 무거운 것부터 해체가 돼요. 흙의 요소, 피부라든지 뼈라든지 이것부터 해체가 돼요. 그러니까 흙의 요소가 물의 요소로 해체되고, 물의 요소는 불의 요소로 해체되고, 불의 요소는 바람의 요소로 해체되고, 바람은 의식 속으로 해체된다. 그래서 몸의 구성요소인 흙, 물, 불, 바람이 전부 다 해체되고 결국 의식만 남아 있는 상태거든. 그때는 이 호흡이 끊어진 상태일 거예요. 병원에서 죽으면 호흡이 끊어지면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못하게 해야 돼요. 그때 다시 죽음의 과정을 한 20분 정도 또 거쳐요. 그래서 호흡이 끊어지고 난 다음에 한 30분 정도는 몸에 손대지 말라고 얘기해야 돼요. 아주 중요한 겁니다. 이제 그다음에 흰색 마음이 생기며 확 밝아요. 보통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은, 죽다 살아온 사람이 밝다고 얘기하는 그거예요. 두 번째 단계는 이 붉은 색 마음이 나오는데, 저녁노을 같이 주변이 아주 붉고 아름다와요, 이제 흰색 마음이 밝게 보일 때는 분노가 사라지고, 저녁 노을 같이 밝게 보일 때는 탐욕이 사라진다고 얘기하죠. 근데 그때 다시 되살아난 사람도 있어요. [달라이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는 책을 보다 보면, 그 책을 저술하신 분이 제프리 홉킨스라는 분인데, 그 버지니아인지 어떤 대학 교수예요. 달라이라마 스님과 대담을 해가지고, 전부 그걸 기술해서 책이 나왔는데, 거기에 이분이 그런 거죠. 자기가 이 밝은 빛을 보고 그다음에 이제 붉은색 빛을 보다가 깨어났다는 거죠. 그 다음에 하늘과 땅이 딱 만나는 것처럼 깜깜해진다는 거죠. 깜깜해지면 보통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 명상을 하지 않으면 의식이 기절해버려, 놀래가지고. 한 3일이나 4일쯤 되면 깨어나는데 그때는 요즘은 삼일장해서 다 화장해버리잖아요. 제사 지낼 때야, 그죠. 그때 막 깨어나서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제 그걸 지나면 그다음에는 새벽 하늘에 이렇게 해가 뜨듯이, 해가 뜨기 전에 새벽에 확 밝듯이 마음이 밝아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것을 뭐라 그러냐면 청명한 빛, 정광명이라고 그래요. 여러분 마음의 본성이 빛입니다. 가장 극미시한 마음의 빛이죠. 그래서 이제 대개 공성에 대한 학습을 하고 수행을 한 사람은 그것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런 법신을 얻는, 생사에서 완전히 벗어나죠, 얘기하자면. 그런데 못 깨달으면은 이제 49일 동안 이 중음의 세계 속에 있는 거예요. 그러면 49일 동안 7일마다 한 번씩 태어나고 죽고 반복해요. 여섯 살에서 일곱 살의 몸을 갖고 있어요.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에요. 기운, 그 바람 요소인 기운과 마음에서 형성된 몸을 이루고 있는 거에요. 이것은 이제 일곱 번 죽고 일곱 번 태어나. 그래서 7일마다 한 번씩 재를 올리는 거예요. 여기도 그렇게 하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죠. 그때는 수행자는 보신불의 수행을 한다. 보신 부처님 몸이 기운과 마음으로 이뤄진 몸이거든요. 중음의 몸하고 똑같아요. 기도하실 분은 기도를 하고, 중요한 거는 어떻게 해야 될까? 좋은 어머니를 선택해달라고 불보살에게 기도를 하는 게 좋겠죠. 그래서 49일쯤 되면, 이제 다시 어머니 자궁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근데 이제 성인들은 어떨까? 성인들은 자궁에 들어갈 때도 의식이 깨어 있어요. 그래서 이걸 입태일여(入胎一如)라고 그래요. 그러면 태중이 있으면서도 의식이 깨어 있으면은 태중일여(胎中一如)라 그래요. 그래서 거기에 태자서응본기경이라 하는 경전에 보면 싯다르타 태자가 호명보살이죠. 어머니 자궁에 들어가고, 거기에서 명상을 하거나 또는 신도를 모아놓고 법상에 올라 법문하기도 하고, 자궁 속에서. 마야 부인은 그걸 보고 있고. 이런 게 이제 경전에 나오는 거예요. 태어날 때도 의식이 깨어 있으면 출태일여라 그래요. 그리고는 만일 그런 경지에 간다면은 청담스님은 그것을 영겁일여라고 그래요. 영겁. 이제 영원히 안 이분은 생로병사도 일여하는 상태라는 거죠. 그런데 이런 입태 태중 출태 일여 이런 이야기는 초기 경전이 나와요. 얘기하자면. 그리고 제가 얘기했잖아요. 눈을 뜨나 감으나 보는 마음이 바뀌지 않고, 늘 소리를 듣거나 안 듣거나 이렇게 듣는 마음은 늘 현현해 있다. 안 죽는 놈이다. 달마 스님하고 혜가 스님 이야기를 하다 말았는데, 달마 스님이 아무 소리 안 했어요. 왜냐하면 명명불매 료료상지를 얘기했는데도 확답을 안 하니까 여기 부처님 법인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 말씀해 줄 수 없다. 이렇게. 그러니까 혜가스님이 “저 마음이 너무 답답합니다.” 그렇죠? 설명해 줄 수도 없다고 그러죠. 네가 깨달았다 안 깨달았다 인가도 안해주지, 답답하다, 그렇죠? 그러니까 “너 그러면 답답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내가 해결해 주겠다.” 이래요. 그러니까 혜가스님이 “아무리 답답한 마음을 찾아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이러니까 절을 딱 하는 거야. “니가 뭘 봤기에 니가 나한테 절을 하느냐?” 이렇게 달마 스님이 말하니까 이렇게 얘기해요. “명명불매, 밝고 밝아 어둡지 아니하고, 료료상지, 또록또록하여 죽지않는 항상 아는 앎이 있습니다. ” 그때서야 달마 스님이 인가를 해줍니다. “그래 그것이 부처님부터 내려오는 심체이니라. 잘 간직해라.” 인정을 해주는 거죠. 핵심이 거기에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여러분들도 기도를 열심히 하고, 기도만 하지 말고 명상도 좀 하면, 수행도 하면 좀 좋지 않을까? 이생에 수행 못할 분은 열심히 기도해도 괜찮아요. 기도만 해도 괜찮은데, 그래도 호기심이 있으면 명상을 좀 해봐. 삿된 명상을 하지 말고. 삿된 거 많으니까. 어쨌든 이제 제가 여러분들이 죽음의 과정이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쭉 했는데, 원래는 여덟 단계로 쭉 가다가 태어날 때는 역순으로 여덟 단계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런 과정이 완전히 종식된 게 열반을 얻는 거예요. 열반을 얻는데, 열반이 이제 여러분 알다시피 료료상지 또록또록 항상 아는 앎 그게 열반이에요. 대열반. 그걸 원각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승가에서는 본래 면목이라고 그러고, 한 물건이라 그러고, 화두라고 그러고, 불성이라고,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어쨌든 과학자들이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해결하지 못하는, 천문학자도 그걸 모르고, 물리학자들도 모르는 이야기, 이것은 오로지 절집에만 있어요, 얘기하자면. 그래서 부처님부터 이게 전승돼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꼭 이거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백중 기도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중생 구제하는데 내가 불사의 경지 이르고, 이뤘다면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죠. 그런 분들 구제해야 되겠잖아요.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를 하면은, 유마경에 보면, 유마거사가 급고독장자 집에 가요. 그러니 장자의 아들하고 대화를 하면서, 급고독장자의 큰 재가 열리고 있는데, 유마거사가 하는 말이 “돌아가신 분에게 올리는 가장 최상의 공양은 법공양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걸 잘 기억을 하고, 제사 지낼 때도 그냥 절만 하지 말고 마지막에 반야심경이라도 한 편 읽어 드리세요. 그게 최상의 공양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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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7월 26일 백중 2재 법문
정목스님 2023-07-26
-염불은 깨닫지 않은 깨달음- 반갑습니다. 저는 한 삼십 년 동안, 스님 된 지는 더 됐고, 오직 염불만, 나무아미타불만 하고, 나무아미타불에 관한 저술도 많이 냈고, 어쨌든 한국에서 제일 많이 냈어요. 이 불교 사회 염불, 이 위대한 법이라는 것을 한국뿐만 아니고 중국, 일본, 대만, 미국에까지 다 알리려고 제가 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니까 대중 법회도 그렇게 많이는 못 하고, 초대하는 데는 가서 합니다. 제 법문 중에, 염불도 여러 가지가 있고, 참선도 여러 가지가 있고, 나무아미타불 염불도 상중하의 수준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제 여기 진관사에 와서는 나무아미타불의 중급, -무시한 건 아니고,- 왜 그러냐 하면, 중급 중에서 상, 상급을 하게 되면은 참선에서 견성했다는 거 하고 똑같아요. 어쩌면 더 뛰어나다. 이거는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건 진관사 tv나 우리 동영상으로 다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는 여러분이 다음에 와서 또 들을 기회도 있고요. 오늘은 중급을 하는데, 이 중급도 원효의 정토 사상, 나무아미타불의 수행법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여기 여러분의 스님들이 계신데, 이 스님들께서 다 삼십 년, 사십 년 되시고 열심히 공부하시고 하는데, 10년 20년, 30년이 돼가지고 여기에 있는 내용을 들었으면 이 염불법이 중급이 아니라 하급이라. <염불은 깨닫지 않은 깨달음>부처님께서 세계와 인간의 존재법칙을 밝힌 연기법.일심· 이문· 삼대의 일심법, 네 가지 지혜의 무상보리,삼신의 보리 등, 일체의 법을 말씀하신 것은심체에 상념이 없는 진여법신을 증득한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그러나 굳이 그 깨달음을 얻지 않아도안락을 얻는 희유한 법이 있다.염불은 깨닫지 않은 깨달음[상사각]으로지혜와 복덕이 증장하는 최상의 법이다. 아미타불이 어디에 계시는가?부처님의 몸은 법신[진여] · 보신[지혜의 모습]·화신[응신: 32상 80종호를 갖추신 몸]이 있는데어느 부처님을 중심으로 말하는가에 따라 다르다.화신의 아미타불은 서방에 계시고,법신의 아미타불은 우주법계에 계신다. [법계신]모든 부처님의 몸의 본성은 진여인 법신이다.진여는 세계와 인간의 본성이며 여래의 법신이다. 우리 몸에서 청정한 진여의 힘이 작용하면지혜와 복덕이 증장한다. 예배문/ 신업청정 / 몸을 굽혀 절을 함찬탄문/ 구업청정 / 시방에서 소리를 듣는다.작원문/ 의업청정 / 삼매 / 일상관관찰문/ 지업청정 /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회향문/ 방편지업청정 /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회향. 이 내용은 제가 들고 다니는 거예요. 원래 어디 가든지 법문 딱 이 프린트를 해가지고, 한 장씩 제가 메모해서 외워가지고, 또 이제 소화시켜서 하는데, 항상 가면 주지스님에게나 어디 가서 “오늘 제가 이 법문할 겁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드려요. 어디 가서든지 그렇습니다. 가서 헛소리 하면 안 되니까, 주지스님의 뜻에 어긋나면 안 되니까 딱 드립니다. 드리면은 그 중에 한 열 명 중에 한 명 정도만 복사해가지고 “우리 신도들 다 나눠주시죠.” 이렇게 하시는 분은 열 분 중에 한 분밖에 안 계신데. 정말입니다. 저는 법문 준비를 아주 철저히 해가요. 모든 세미나에 가서도 여기 글이 틀리면 안 돼요. 이 글은 또 밖에 돌아다니기 때문에 아주 띄어쓰기가 틀려도 안 되고, 뜻이 틀리면 더욱 안 되고 그렇습니다. 오늘 주지스님께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렸냐 하면, “주지스님, 진관사를 이끌어 가겠습니다.” 역시, 이거는 있죠, 배포가 큰 것이고, 센스도 빠른 것이고, 그 초대한 스님에 대한 믿음도 있는 겁니다. 주지스님이 사십 년 생활하시면서 이런 말은 저한테 처음 들어볼 거예요. 제가 아주 정확하게 보니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딱 해가지고 가면은, 읽어보고 논리도 철저하고. 여러분들이 말로 끝내고 말면, 내일모레 지나면 그 스님이 무슨 법문 했는지 다 모르거든요. 다 잊어버리거든요. 여러분 그렇죠? 글로 딱 해놓으면 자기 집에서 보고 보고 씹고 또 씹고 새기고 그러잖아요. 그럼 혹시 주지스님한테 자꾸 물어볼 수도 있고, 주지스님 법문하고 비교를 할 수도 있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그냥 나눠주라 소리를 안 해요. 그런데 이제 다 봐야 되고, 꼭 주지스님이 복사해서 드리라 하면 드리죠. 저는 절대 임의적으로 드리지를 않습니다. 같이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같이 읽으면. 오늘은 이제 <염불은 깨닫지 않은 깨달음이다.> 그런 주제로 하는 거예요. 깨닫지 않은 깨달음이다. 염불은, -따라서 하겠습니다.- 염불은 깨닫지 않은 깨달음이다. 대강 이해를 하겠어요? 어렵든지 안 어렵든지 말은 일단 재밌죠. 염불은 깨닫지 않은 깨달음이다. 이건 그냥 사람들한테 재밌게 들리라고 한 게 아니고, 약 한 30년 동안 피땀 흘리고 각고 끝에 제가 내린 결론 중에 하나에요. 뭐냐 그러면은 이런 겁니다. 우리가 지금요, 여기 보면 있어요, 글에. 이제 대강 말을 듣고 보면 알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는 연기법이다. 또 무슨 사성제다 또 팔정도다 이런 거 배우죠. 제가 이제 평생 집중적으로 배우는 공부는 뭐냐 그러면, 연기에 대한 것, 그다음에 일심에 대한 것, 그다음에 무상보리에 대한 것, 그다음에 이제 삼신의 보리에 대한 것 이런 것들이에요. 여러분이 잘 들어보지도 못한 얘기야. 아주 차원 높은 공부입니다. 원효가 세상에 알리는 데 실패한 공부입니다. 실패한 공부. 왜? 그 당시도 너무 수준이 높은 거라서, 당나라 스님들이 “이거 뭐야. 말이 왜 이리 어려워” 그러면서 그냥 내쳐버린 불교학이에요. 그러나 이제 지금은 인재가 발달하고 있으니까, 여러분들도 자꾸 설명을 하면은 다 알 수가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이 이제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이 말이에요. 이것은 우리 범부 생각처럼, 무엇을 가만히 사유하고, 과학자들이나 무슨 불교학자들이나, 이런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유하는 것처럼 자꾸 씹고 씹고 또 사유하고 사유하고 해가지고 내린 결론이 아니고, 부처님의 깨달음은 그런 결론이 아니고 뭐냐 그러면은, 이 심체라 그래요, 심체. 우리 마음의 본체 있죠, 마음의 본성에 상념이 하나도 없다. 이제 용어가 어려워 좀. 상념이 하나도 없다. 번뇌가 하나도 없는 상태를 진여법신이라 그래요. 그냥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 본성이 진여법신이다. 따라서 하세요. 진여법신. 진여법신을 증득했다 그래. 번뇌가 하나도 없는 상태를 자기가 들어가야 돼, 그 상태에. 거기에서 깨달은 것이 이 팔만 사천 법문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법문을 쫙 내놓고, 이제 수행법도 만들어 놓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제 나도 그 번뇌가 없는 진여 법신을 증득해야 연기법이라든지 인과라든지 사성제 팔정도, 이런 것을 명확하게 알 수가 있어. 명확하게 ‘아. 맞구나.’ 하고 알 수가 있단 말이야. 그래서 이 모든 일이 뭐냐면 중생,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이후에 특히 선종에서 ‘나도 부처님처럼 한 번 깨달아보자.’ 그러고 지금 선을 하고 있죠. 선을 한다. 선이든지 주력이든지 다 할 수가 있어. 이것을 보고 견성이라 그래, 견성. 진여법신을 깨닫는 것을 진여법신의 자리를 체험하는 것을 견성이라 그래요. 많이 들어봤잖아. 우리나라에서 1,600년 동안 해온 말이잖아. 그래도 나는 가장 현대적이고,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고, 그다음에 불자가 아니라도 알아들을 수 있게 지금 설명을 하려고 애를 쓰는 거야. 그걸 견성이라 그래. 그러면 견성은 어려울까 쉬울까?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인간이 순간이라도 번뇌가 제로가 되는 것은 아주 어려워요. 아주 짧은 순간에 될 수는 있는데, 한나절이 되거나 삼일이 되거나,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제 부처님은 그런 상태로 14일 동안 앉아 계셨어요. 그러면 오늘도 지금 결제 기간이니까 전부 이제 견성을 해보겠다고 앉아 있죠. 여러분도 시간이 있으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없을까?(없어요.) 이거 잘 알아야 돼. 잘 알아야 된다고. 여러분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어려워요. 그러니까 이 염불은 그 견성이라는 깨달음이 있죠, 그것과 비슷한 수행법이다. 그러니까 그 견성이라는 깨달음을 깨닫지 않아도 염불을 하게 되면은 불자가 아닌 사람, 불교에서 믿음을 성취하지 않은 사람, 매일 신을 믿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깨달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지혜를 얻고, 삶이 풍요로워지고, 잘 배우면 그렇다 이 말이야. 이것을 보고 깨닫지 않은 깨달음이라 그런다. 견성은 깨달음은 아니지만, 견성을 깨달음을 진짜 깨달음이라고 그러고 진각이라 그래. 그런데 그 깨달음은 아니라도 밖에서 범부가 깨달은 게 있죠. 이건 뭐냐 하면은, 전날은 악을 짓고 해가 지나서 오늘 ‘아, 내가 잘못됐다. 내가 잘못됐다. 앞으로는 악을 짓지 않아야 되겠다.’이건 깨달음인가 아닌가? 그러니까 이거는 세속의 깨달음이다. 세속의 깨달음이지, 불교에서 요구하는 깨달음이 아니야. 아시겠습니까? 이거는 불교를 믿지 않아도, 누구라도 다 깨닫는 깨달음이야. 이거는 깨달음이 아니야. 염불은 이런 깨달음, 세속에서 악을 짓다가 마음을 돌이켜서 선을 짓겠다고 깨닫는 이런 깨달음하고 차원이 틀린 깨달음이다 이 말이에요. 이 내 가르침의 요지는 있죠, 한국의 학자, 뛰어난 철학자, 그다음에 스님들, 10년 20년 나보다 더 든 선배 스님이라도 이걸 설득시키기 위해서 온 내가 지금 혼과 열을 쏟는 거예요. 이 이치, 여러분도 자꾸 얘기하니까 알아듣겠죠. 이겁니다. 이거는 아주 어려운 거에요. 내가 말한 거를 녹음해서 자꾸 들어보세요. 무슨 말을 하는지. 이 정치인들 있죠, 정치인들이든지 기업인들이든지 도둑놈이든지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자꾸 깨우치잖아요. 자기들이 반성하고 그러죠. 그런 깨달음하고는 염불의 깨달음은 전혀 틀리다 이 말이야. 차원이 틀리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말을 붙인 거예요. 부처님이 요구하는 진짜 깨달음은 범부들이 깨닫는 깨달음하고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깨닫지 않은 깨달음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넘어가서, 아미타 부처님이 서쪽에 계시다고 그러죠. 들었죠? 여러분도 믿고 있죠? 아미타 부처님이 이 땅에도 계시다는 말씀 들어봤죠? 그럼 모순이잖아. 모순. 우리 또 주지스님께서도 반드시 그리했을 거예요. 돌아가시면 전부 서방에 극락 왕생한다 그러셨다가, 어느 때는 또 차 마시면서 <염념보리심 처처안락국>이다 그랬을 거예요. 그렇죠. 여러분 들었죠? “마음 잘 쓰면 이 땅이 극락이다” 그러죠. 많이 그랬죠? 그럼 우리가 무심코 얘기를 해요. 무심코 얘기를 하지만은, 이것은 논리적으로 상당히 모순이 있는 거예요. 서쪽에 있다 그랬다가, 여기도 있다 그랬다가. 그러면 서쪽에도 있고, 여기도 있는 거죠. 그래요? 아미타부처님이 여럿이 돼야 되잖아. 왔다 갔다. 이거는 백년, 이백년 전, 부처님의 말씀이, 관무량수경에서 “그대는 아는가.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멀리 계시지 않는다.” 이렇게 했어요. 가까이 있다 이 말이야. 그리고 또 부처님께서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지금도 서쪽에서 설법하고 계신다.” 그랬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 모순을 해결하는데 100년, 200년이 걸리는 게 아니고, 일단 서기로 육백 년 경에 원효스님이 답을 내놨어. “그건 말이야 이런 뜻이야.” 그러면서 내놨는데, 중국이나 일본이나 대만 사람들이 안 들었어요. 이쪽에 있으면 이쪽에 있고, 요쪽에 있으면 요쪽에 있다고 그거 하나만 믿으면 되는 것이지, 뭐냐. 원효가 이제 풀어놓은 거야. 풀어놓은 얘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 풀어놓은 겁니다. 이건 이제 원효 화쟁 사상이에요. 부처님의 몸이 세 가지 몸이 있어. 여러분들도 지금 자꾸 인격이 올라가는데, 뭐냐 하면은 덕을 많이 쌓게 되면 몸이 자꾸 뚜렷하게 분리가 돼. 한 몸인데 알 수가 있다고. 여러분들도 덕을, 선행을 많이 쌓는 사람은 얼굴의 모습이 딱 보이죠. 안 보여요? 보여요.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안 보입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은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이 보여요. 같이 어지러우면 안 보이는 거예요. 아주 마음이 착한 사람은 도둑놈을 금방 봐요. 여러분은 도둑놈이 잘 안 보이죠? 주위에 도둑놈이 딱 걸어다니는데 잘 안 보이면, 여러분도 수상한 사람이야. 화를 잘 안 내는 사람 있죠. 이런 사람들은 화를 조금만 밖으로 내려고 하는 사람도 봐버려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화가 올라오는 거 잘 안 보이죠? 보여야 됩니다. 우리도 이제 마음의 본성과 밖으로 나타나는 특성과 행위, 행위가 아주 명확해지고 바르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더 올라가면. 그런데 이제 부처님은, 성도 하시고, 몸이 세 가지로 분명해졌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는 법신이고, 하나는 보신이고, 하나는 화신이다. 많이 들었죠. 그래도 오늘 개념 정리를 명확하게 해서 한 번 더 하겠습니다. 법신, 보신, 화신. 법신은 뭐냐 그러면은, 이 몸이 진여로 돼 있다는 거야. 진여. 굉장히 설명이 어려워요. 이건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되는 거라. 진여. 아주 쉽게 말해서 청정한 에너지로 돼 있어. 청정한 에너지. 가만히 있질 않아. 이 법신의 몸 본성이 가만히 있질 않고, 계속 이 몸 안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어. 미세한 파장. 이게 뭐냐 하면 이 현대의 과학의 기계라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거예요. 우리 몸이. 아시겠어요? 여러분 아무리 잠자고, 고요하더라도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그 진여법신이 이제 만물을 생산해내고, 모든 선업을 짓는 본성이에요. 진여 법신, 진여 법신이 있어. 그런데 그 부처님의 진여법신하고 우리 본성과는 같을까 다를까? 같을까 다를까? 같을까 다를까? 지금 정답이 안 나오니까 자꾸 묻는 거야. 그거를 알아야지. 그럼 빨리 돌려야지. 왜 스님이 자꾸 묻는지 모르고 그냥 달라요, 달라요.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지금부터 세 번 물으면 틀린 거야. 알았죠? 주지스님이 수백 번 얘기했을 거야. 부처님의 본성과 중생의 본성은 같다 틀리다? 인제 정신 차려. 같아요. 아시겠어요? 같단 말입니다. 이 본성 있죠, 본성. 이 본성은 사람의 본성하고 같을까 틀릴까? 같을까 틀릴까? 자신 있게 같아요하는 사람은 있죠. 항상 더 배워가지고 도반들에게 같다는 것을 얘기를 해줘요. 그래서 모르면 또 스님들께 와서 물어보고. 아시겠어요? 서양 철학하고 무슨 기독교하고 이런 거 하고 전혀 틀린 거야, 불교는. 부처님과 이 중생, 나의 성품이 같을 뿐 아니라, 이 자연의 성품하고도 똑같다. 저번 주에 우리 회주 스님이 와서 법문 하시는데 그렇게 하더구먼. 토지 정기라고. 들었어요. 대지정기인데 아함경에는 이걸 보고 이제 진여를 정기라 그래. 그거 놔두고 진여로 통일시키고 보세요. 그러니까 이 자연, 모든 산하대지 산천초목 그 성품하고 사람의 성품하고 부처님의 성품도 똑같다는 거야. 그렇게 아세요. 그렇게 이걸 보고 이제 법신이라 그래요. 부처 몸 하면서 법신이라 그러고. 보신은 뭐냐 하면, 여름 하면 보신 생각나죠? 아무리 여름이 와도 부처님 모시는 생각해요, 아시겠어요? 부처님 보신 생각하면은 엄청난 지혜를 얻는 거라. 부처님 보신은, 부처님의 안목으로, 부처님의 지혜로 바라본 세계의 모습을 말해. 지혜의 모습, 세계의 모습을 말해요. 부처님은 이것을 아주 감성적으로 얘기했어. 부처님은 이 모습을 우리와 다르게 봐. 아시겠습니까? 똑같은 배고 바나나고 수박이고 그러는데 다르게 봅니다. 똑같이 본다 그러면은 부처님이 아니야. 다르게 봐. 이 다르게 보는 차원이 아주 많아요. 이 부처님이 바라보는 지혜의 모습을 우리가 금방 알 수 있을까 없을까? 지혜가 부처님만큼 높아야지 아는 거예요. 보살은 보살의 지혜로 보는 것이고 부처님은 부처님의 지혜로 보시는 거고 그래요. 그다음에 이제 부처님의 성품이라는 법신을 우리가 바로 바로 느끼거나 볼 수가 있을까 없을까? 없어요. 화신은 뭐냐 하면은 아까 그 성품 법신이나 지혜의 모습이나 이것과 다르게, 30 이상 80종호를 갖추고 나온 부처님을 화신이라 그래요. 이러한 보살의 모습, 부처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을 화신이라 그럽니다. 그러면 이 화신의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아미타불 부처님이나 전부 화신이고 법신이고 보신이고 그래요. 그런데 이 형상에 있는 부처님은 장소가 있어요. 장소. 형상이 있는 부처님은 장소가 있어. 장소가 없으면 공중에 매일 날아다녀야 되잖아요. 부처님도 땅을 걷고 다녀요. 그래서 형상이 있는 부처님은 여기 우리 사바세계에 살고 있거나 서쪽에 살고 있거나 장소가 있고, 이 법신의 부처님은 장소가 없어요. 여기 지금 우리는 법신의 부처와 보신의 부처를 중심으로 수행을 해야지, 지혜가 아주 뛰어나게 발달한다 이 말이에요. 우리가 이 법신을 조금이라도 체험을 해야지 지혜가 늘어나고 복덕이 늘어나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달라지고 그렇습니다. 아무리 지금까지 공부를 많이 했느니 안 했느니, 무슨 가방끈이 짧고 길고 전혀 틀려. 저는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우리나라에서 스님들 중에서 일을 많이 한 사람이에요. 노동. 노동도 막노동. 아주 깊은 산속에서 농사 짓고 그래. 지금은 이제 힘들어서 안 하고. 가방끈이 길지 않은 사람이라니까. 완전히 보통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지금 희망을 주려고 그러는 거에요. 모든 스님들한테. 나는 그런 사람인데 지금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거라. 법신을 체험을 해야지, 정말로 이 불법에 대한 환희심을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염불을 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여기에 적어놓은 거 있죠. 우리 몸에서 청정한 진여의 힘이 작용하면 지혜와 복덕이 증장한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온몸이 진여로 돼 있어요. 청정하다 이 말이에요. 이해가 가죠? 이거는 불자들은 이해를 잘 못해. 왜 그러냐 하면 자기 집착에 딱 빠지고 자기 수행법에만 빠져가지고. 그런데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있죠, 일반 학생들 있죠, 얘들이 더 잘 알아들어. 여러분들도 항상 법문을 마음을 열어놓고 들으라고, ‘나는 이렇게 알고 있는데 오늘 저 스님은 무슨 법문을 할까?’ 그렇게 오면은 그 마음 자세가 아주 애초에 틀린 거야. 그럼 안 들어가. 법문이 안 들어가. 오늘 딱 비우고 내 얘기만 일단 들어야 돼. 옳고 그런 거는 다음에 판단을 하고. 이 진여가 한 80%나 70% 60%나 이 정도가 돼야지 우리가 공덕을 얻고 지혜가 늘어날 텐데, 진여가 작용하는 거, 우리 몸에서 청정한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 10%나 5%밖에 안 돼. 기분 나빠요? 실제로 그래. 프로수가 너무 적으니까 이것이 작용하는지 아닌지를 여러분들이 감지를 못해. 감지를 못 하는 거는 프로수가 적은 거예요. 이것이 이제 많이 여기서 작용을 하면 30% 이상, 40%, 50% 작용을 하게 되면은 자기가 알아, 안다 이 말이라. 이제 이것을 보고 진짜 환희심이라 그래요. 그런데 100% 법신을 깨닫는 것을 진짜 깨달음이라 그래요. 체험하는 거 이걸 안 해도, 진여의 작용을 많이 받으면은 이것은 깨닫지 않은 깨달음이다 이런 뜻으로 얘기한 거예요. 보세요, 첫 번째 절이라는 게 여기 있죠. 예배문, 찬탄문, 작원문, 관찰문, 회향문이다. 이거는 여러분들이 이제 많이 하고 나서, 다음에 5년 후, 3년 후나 뒤에, 세계적인 그 염불 수행에 관한 많은 어떤 책들을 보게 되면은 이런 글을 보게 돼 있어. “여기도 있네” 하면서 보게 돼 있다고. 아주 뛰어난 분들이 연구하는 것이 바로 이거예요. 예배문이라. 예배문은 여기서는 절을 해요. 절. 절을 하는데 여러분이 지금은 지장보살 하죠. 지장보살을 나무아미타불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없을까? 바꿀 필요 없어요. 원리만 아세요. 관세음보살이라든지 지장보살이라든지 아미타불이라든지 원리는 알았어요. 원리는 아는데, 여러분들이 지금 여기에서 지장보살 지장보살하면서 어떤 원을, 소를 가지고, 소원을 하나를 세워가지고 하지요. 주지스님이 또 그러라 했을지 몰라. 뭐든지 소원 하나 진관사에 하면 성취되니까 다 그것만 빌고 하라고 한 적 있어요? 아무리 급해도, 손주 입학이 아주 급해도, 우리 며느리 지금 수술이 아주 급해도, 그거 생각하지 마. 하지 말고 절을 해. 내가 시키는 건 이제 아미타불인데, 나무아미타불하고 이제 꿇어앉는거야. 이해하죠? 서서 합장하고 있다가 나무아미타불 이러면서 꿇어 앉는 거지. 그다음에 무릎 꿇고 앉는 거, 나무아미타불하면서 절하는 거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것만 해. 이렇게 하면 여기 잡념이 없어지잖아요. 잡념이 없어지는 자리로 진여에요. 진여는 기운이에요. 진여는 에너지입니다. 우리 회주스님도 에너지라고 그러데요. 그래서 우리 회주스님이 확실히 잘 알고 있다. 현대적으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가장 쉽게 말하면 에너지입니다. 에너지. 이게 이 자리에 집중을 했을 때, 딱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집중을 하고 있을 때, 진여가 이 빈 자리를 뚫고 들어와. 들어온다니까. 이 진여가 어디로 들어오냐면 구멍이 있어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온 육근으로 다 들어와. 실제로. 그런데 진여의 힘이 아주 강렬한 건 아니야. 강렬한 건 아니라 저 이 무명의 힘이 강하면 이것이 다시 또 밀려나버려요. 우리 계속 그러고 있는 거라.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주 착한 마음 먹고, 근심 걱정도 없고 그러면, 60이 넘었는데도 또 다시 시집 갈 사람처럼 막 얼굴이 훤하고 막 그래 보이는 거야. 진여가 작용이 돼서 그래. 아시겠어요? 절을 이제 옛날에 하던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고, 여러분들이 절을 되게 반동으로 하잖아요. 반동으로 절하는 거 알죠? 108배를 금방 빨리하면 안 되고, 천천히 해야 돼. 많이 한다고 복을 빨리 받는 게 아니고, 절을 천천히 하시라. 그리고 절을 많이 목표를 세워가지고 하지 마. 천 배, 이천 배 세워놓고 하면 그건 바보짓이라. 적게 해도 진심으로 천천히 하시라. 이제 여러분들이 다 끝나고, 이 예배문을 다 하고 나서, 아들 손자 며느리 그때는 그냥 마음대로 우리 손자 우리 손자 우리 손자 우리 손자 그러든지 돈돈돈돈돈돈돈 그러든지 알아서 하세요. 할 때는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러면 청정한 진여의 힘이 작용하게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소리 있죠. 이제 나무아미타불을 하든지, 지장보살, 우리 스님 지장보살을 잘 하시대. 다른 거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은 나는 잘 못 해. 나무아미타불만 조금 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할 때 숨을 꼭 타에서만 쉬어. 이건 이제 아주 기본적인 것만 그런데, 지장보살을 할 때도 한 곳에서만 숨을 쉬어야 돼.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이렇게 하지 말아요(숨 쉼없이 계속함). 아시겠어요? 그렇다고 여기서 쉬다 저기서 쉬다 그러면 안 되고, 고르게 딱 하려면은 항상 숨이 조금 남아 있을 때 숨을 쉬어야 돼요. ‘아, 스님이 타에서 쉬라 그랬다 타에서 쉬라 그랬다.’ 그래가지고 꼭 타에서만 쉬면은 타에서 쉰다는 그 생각 때문에 다른 생각이 들어오질 않아. 이치를 알았죠. 아까 절도 집중해서 나무아미타불의 타에서 하라고 했지요. 지장보살도 할 때 어느 하나 지점을 정하면 되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절하고. 그러면 이제 절을 한 번 할 때 나무아미타불을 네 번을 해. 꼭 네 번밖에 안 해. 스님이 타에서 몸을 움직이라고 그랬지, 그러니까 이 가르치는 사람한테 대한 믿음이 강해야 돼. 스승에 대한 믿음이 강해야 돼. 그래야지 되는 거라. 그러면 이제 그 생각 때문에 잡음이 안 들어오는 거야. 아시겠어요? 이 산천초목도 본성이 진여라고 그랬죠. 사람의 본성도 진여라고 그랬죠. 짐승도 다 진여죠. 그러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러면은 산천초목이 내 소리를 들을까 안 들을까? (들어요) 이거는 어떻게 강력한 믿음이 있네. 이거를 믿어야 돼. 저건 미신 아닌가? 신비주의 아닌가? 그렇지 않아요. 강력한 믿음이 돼야 돼요. 이게 여러분이 여기서 아주 고요한 소리로 청아한 소리로 욕심이 없는 소리로 여기서 염불을 하면, 주지스님은 마음이 움직일까 안 움직일까? 대중이 움직여요. 대중이 다 움직입니다. 그래서 대중이 헛짓거리를 못 해요. 누구나 똑같이 듣는 감정은 들리지만 다 움직입니다. 움직이고 이 진여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 파동은 수행자들이 금방 알아버려요. 여러분이 분풀이로 염불할 때도 있죠? 가서 그냥 관세음보살이나 불러버리자. 그러면은 그건 진여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야. 그러니까 산천초목이 다 싫어. 믿으세요. 평생 믿으라 안 할 테니까 이번 사십구일 있죠, 이동안만이라도 믿고 해봐. 그러면 반드시 변화가 있어요. 그다음에 세 번째, 첫 번째 절하는 것, 두 번째 이 명호를 입으로 부르는 걸 찬탄이라 그러고. 찬탄. 절이라는 거는 신업청정이고, 찬탄문은 구업청정이고, 작원문은 의업청정이라. 요거 삼매를 닦는 법이에요. 그러면 여러분 이제 절도 했는데 힘도 들고 땀도 나고 소리를 했는데도 소리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그렇죠? 그러면 이제 가만히 앉아서 할 수도 있어요. 앉아서 하는데 이때는 일상관이라는 거 있죠, 일상관. 이건 무슨 말이냐면 중생은 이 목표가 유상 유념, 어떤 형상이 있어야지 그것을 보고 집중하기가 좋지, 지금처럼 화두를 든다. 스님들은 화두 들죠. ‘이뭣고’를 든다든지 시심마를 든단 말이야. 그건 내가 깊이 봤을 때는 굉장히 우스운 일이야. 왜 그러냐 하면, ‘이뭣고’든 ‘시심마’든 형상이 없고 어떤 화두로 말을 개념을 준 거죠. 그렇죠? 여러분들이 그 안 해도 번뇌가 많은데, 스님들도 번뇌가 많아요. 많은데 이것을 깨달으려고 하니 설상가상이라, 번뇌 위에다가 진짜 큰 번뇌 또 하나 주는 거야. 그래서 누구든지, 스님이든 누구든지 처음에 삼매에 들어가는 연습을 할 때는 일상관해요. 해의 모습이 있죠. 지는 해의 모습을 일단 딱 놓고, 이건 다 선종에서도 한 거예요. 해의 모습. 이 지는 해의 모습. 뜨는 해의 모습은 마음으로 생각만 해도 눈이 부시거든. 그렇죠? 그래 마음이 대단한 거야. 미운 놈 생각하면 열이 오르죠. 똑같아. 뜨는 해를 생각하면 눈이 부셔. 그래서 집중이 안 돼. 그래서 지는 해를 해야 돼. 이렇게 자꾸 연습을 하면 깊은 삼매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한 곳에 집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여가 작용을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 이치에요. 관찰문. 삼매를 해가지고 아무 생각이 없을 때 다른 잡념이 일어나. 누구든지 한 곳에 지금 한 곳에 집중을 하면은 잡념이 들어오질 않아요. 여러분은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부르면 잡념이 들어오죠. 잡념이 안 들어오다가 지장보살 부르면 들어오죠. 왜 들어올까? 왜 지장보살만 부르고 있는데 잡념이 들어올까? 지장보살만 부르라 그랬는데 지장보살만 안 부르니까 그래요. 아시겠어요? 너무 간단하죠. 지장보살만 안 부르고 다른 거 생각해가면서 불러. 그렇죠. 이렇게 단순해야 돼. 수행은 머리 굴리면 안 돼. 여러분이 머리 굴리는 거 다 버려야 돼요. 조용해 졌죠. 집중을 하죠. 집중. 스님이 뭐냐 하면은 이 일상, 나뿐 아니라 수 100년 200년 천년 내려오는 조사들이 그래요. 오조홍인부터 지금까지 그런 거야. 지금까지 1,500년 동안 면면히 내려오는 일상관이라는 겁니다. 일상관을 하면, 딱 집중을 하면, 마음이 고요해져요. 마음이 많이 고요해지면 계속 집중만 하고 있으면 정신이 몽롱해져버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삼매 중에 관찰을 해야 돼. 관찰. 이 사물을 관찰하는데 어떻게 관찰을 하냐 그러면, 내가 하는 수행법이 아미타불 화신이라고 관찰을 해. 아미타불 화신. 진리의 입장에서, 부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여러분은 아미타불 화신이에요. 아미타 부처님은 화신이라고. 실제로. 그렇게 보라는 게 아니고 실제로 그래. 화신이에요. 이게 끝이라. 계속 화신으로만 봐. 화신으로. 지금 금생에 이 수행이 끝이라고 봐. 아미타불 화신으로 보는 거야. 여러분이 아미타불 화신이라. 여러분이 아미타불 화신인데, 여러분들은 오늘 여기 어떻게 왔냐 그러면, 나의 입장에서는 저 스님이 염불을 제대로 했나 그러고 지금 나한테 실험을 온 거야. 안 그래요? 여러분은 그 뜻을 몰라. 부처님의 뜻은 그래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전부 아미타불 화신이라. 그러면 이제 화신의 의미를 깊이 배우면은 여러분이 이제 난리 나는 거야. 난리 나. 잠도 안 오고 밥도 안 먹고 그냥 밤낮을 잊어버리고 그래요. 이 아미타불 화신 뜻을 알아버리면. 놀라는 일이 생겨. 다 가르쳐줘도. 그만해야지. 아미타불 화신이니까요. 이제 지혜와, 지혜로서 자비를 베풀라 그러잖아요. 그렇죠. 불교는 아주 실용적이고 실존적이고 현실적이고 그렇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 여러분은 보살이 아니잖아요. 그러면은 자비를 베푼다는 것이 좀 마음이 부끄럽죠. 부끄러워. 나도 부끄러운데 그래서 말입니다. 염불의 깨달음은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하고 회향하는 것이다. 알았어요? 그것을 자비를 안 하고 말입니다. 이 중생의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해주는 거야. 이건 내 말이 아니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게야. 나도 여러분한테요, 오늘 왔다 가면서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 하나도 없어. 능력이 없어. 그런데 여러분을 향해서 내가 여러분이 여기 이 더운데 이렇게 많이 모여가지고 법문하는데 이렇게 장엄을 해준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면, 나로서는 더 큰 마음이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아시겠어요?